검사들의 피의사실공표행위를 처벌하라

창비
  • 입력 2012.06.0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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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김인회 / "여론재판을 멈추고 정치검찰을 근절하는 길"


검찰의 수사내용 흘리기 전술이 다시 관심이다. 언론은 검찰이 흘린 내용을 받아 최대한 홍보한다.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이미 수사내용은 유포되었고 이를 시정할 방법은 없다. 수사권 남용이요, 검언유착이다.

<조선일보> 2012년 5월 19일자 1면
<조선일보> 2012년 5월 19일자 1면

<조선일보> 2012년 5월 26일자 11면(사회)
<조선일보> 2012년 5월 26일자 11면(사회)
최근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에 대한 수사에서 검찰의 수사내용 흘리기 전술이 다시 등장했다.

검찰은 "노건평씨 관련 자금 추적 과정에서 수백억원대의 뭉칫돈이 오간, 노씨와 가까운 인물의 계좌를 발견했다. 계좌의 명의는 노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라고 발언했다가 이후 "노건평씨 수사를 하다가 계좌를 발견한 것은 맞지만, 계좌의 뭉칫돈을 노건평씨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3주기를 앞둔 시기였다. 의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언론은 특별한 취재나 확인 없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검찰의 정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노건평씨를 마치 파렴치범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처럼 검찰과 언론은 재판청구 전 수사과정에서 수사사실을 유포했다.

피의사실공표죄를 따로 둔 이유
 
아무리 수사의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피의자의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 수사를 받는 피의자는 불리한 위치에 처해진다. 육체적으로 불리한 위치일 뿐 아니라 정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강력한 국가 공권력이 강제로 혹은 임의로 수사를 하면 피의자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정보들이 수집된다. 이 정보는 개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고 또 허위가 포함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지극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가 '피의사실공표죄'를 두고 있는 이유다. 

피의사실공표죄란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자가 직무수행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혐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하는 범죄를 말한다. 피의사실공표죄는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만 규정하고 있다. 사실 공무원은 직무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을 누설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피의사실공표죄를 따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피의사실공표죄를 따로 규정한 것은 피의자의 인권을 더욱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수사과정에서는 피의자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국가기관에 비하여 피의자가 불리한 위치에 빠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공정성이 담보되기 어렵다. 따라서 수사단계에서 피의사실이 공개되어 언론에 보도되면 피의자가 유죄라는 인식을 일반인에게 심어준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무죄추정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판 청구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고 또 처벌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번 노건평씨 사건과 이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서 본 바와 같이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이 중계방송되듯이 누설되고 공표된다. 그리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 정식재판을 받기도 전에 여론재판이 끝나는 것이다. 재판에는 세번의 기회가 있지만 여론재판에서는 한번의 반박 기회도 없다. 여론재판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여론재판을 멈추고 정치검찰을 근절하는 길

현실에서 피의사실공표행위가 수사되지도, 처벌받지도 않는 첫번째 이유는 수사에 착수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수사권이 독점되어 있으니 수사기관이 같은 수사기관을 수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이번 사건과 같이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한다면,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해 수사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건에서 확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피의사실공표죄 등 수사기관의 직무범죄는 검찰과 독립된 수사기관이 수사를 해야 한다.

피의사실공표행위가 반복되는 두번째 이유는 수사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다른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피의사실을 확정할 사실상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힘을 이용하여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피의자를 도덕적으로 파탄시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이미 수사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 행태다. 그리고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기대하지 않았던 피의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피의사실이 누설되면 피의자 입장에서는 반박하고 설명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정치지도자를 포함하여 공인의 위치에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사실을 해명하면 해명할수록 해명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도덕적으로 상처를 입는 현상이 반복된다. 형사절차를 수사 이외의 목적에 사용하여 얻은 결과이다. 정치검찰의 행태이기도 하다.

피의사실공표죄는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다. 하지만 피의자의 인권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 입법자들이 굳이 피의사실공표죄를 둔 이유를 생각하면 이를 되살려야 한다. 나아가 정치검찰을 근절하기 위해서도 피의사실공표죄를 활성화해야 한다. 검사들의 피의사실공표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검찰개혁 과제 중의 하나이다.




[창비주간논평] 2012-6-7
김인회 /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창비주간논평] 2012-6-7 (창비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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