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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혹은 왜 읽는가

기사승인 2012.06.22  09: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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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렬 / 승자와 패자 사이의 언어로 쓰인 역사 기록집: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지창 저 | 한티재 | 2012.04)


  조지 오웰은 자신이 글을 왜 쓰는가를 자문하며 적어도 네 가지의 동기를 제시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작가로서 글을 쓰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오웰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목적을 꼽는다.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치적 비전을 남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오웰이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다.

  ‘정지창 칼럼집’이라는 부제와 함께 세상에 나온 <오늘도 걷는다마는>이라는 책의 저자 정지창의 공식적인 직업은 교수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대학에서 녹을 받는 교수가 아니다. 대학에서 녹을 받다니.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건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녹’이라는 말은 국가 관리가 정부로부터 받는 봉급을 지칭하니까. 그러나 오늘날, 특히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국가의 하급 기관이고 대학교수는 국가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기관의 관리직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은 국가산업을 운영하기 위한 ‘인적 자원’을 길러내는 곳이고 그 대가로 대학 내의 정규직 교수들은 안정된 수입과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형편이 이러하니 대학에서 교수들이 받는 봉급에 ‘녹’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전혀 어색하거나 틀린 것이 아니다.

 
 
▲ 『오늘도 걷는다마는』(정지창 저 | 한티재 | 2012.04)
 이번에 출간된 정지창 교수의 칼럼집은 대학이라는 이름의 국가 기관 밖으로의 탈주 기록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칼럼집을 통해 현재 한국의 대학이 표상하는 가치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토의 발견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고 있다.
이 책은 주로 2000년도 이후 각종 지면에 칼럼 형식으로 쓰인 글을 묶어서 출간된 글모음집이어서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주제의식 아래에서 쓰인 책은 아니지만 추상적인 이론과 과잉으로 전문화된 지식의 생산에만 몰두하고 있는 대학 교수들에게는 이 책은 왜 우리가 글을 쓰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누구보다도 대학교수들은 이 책을 읽어보라. ‘논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상아탑 안에 갇혀 사는 대학교수들은 교수정년은퇴를 앞둔 저자의 책을 읽어볼만하다. 이 서평을 쓰는 필자 자신의 직업이 교수이기 때문에 교수의 입장에서 이런 논평을 먼저 한 것이지만, 그렇다면 대학교수들이 아닌 다른 독자들에게 이 책은 어떤 책일까? 그 점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해보겠다.

  다채로운 소재와 다양한 주제를 통해 저자가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정치적 비전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지점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사회와 역사가 승자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진보주의니 생태주의니 또는 NL이니 PD니 하는 어떤 협의의 정치적 이념의 틀로는 국한시킬 수 없는 상식과 윤리의 힘이 역사의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민중미술 작가 주재환이나 오윤을 언급한 것도, 농민문학가 이문구나 권정생을 언급한 것도 어떤 특정한 이념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세상에서 억압받는 것들에 대해 같이 가슴 아파하고 잊혀져 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풍모에 맞춰져 있다. 농민작가 이문구의 작품이 저자에게 소중한 것은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농경사회의 마지막 숨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문구나 권정생이 이 시대의 마지막 농민작가로 남지 않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희구하고 있다.

  이처럼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저자의 정치적 비전은 연극평론가로서의 그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평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황지우의 마당극 <오월의 신부>에 대한 에세이 “‘광주’를 위한 장엄 탱화”는 이 책의 첫 번째 글로서 저자의 정치적 지향점이 어디에 놓여있는가를 예술평론의 형식을 빌어 보여주는 글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작품은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정치적 승리 덕분에 챙길 수 있었던 전승기념물이다. 승자는 패자에 대해 가혹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관대해질 수도 있다. 말하자면, 화해와 용서도 승자의 전유물이라는 것이다.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성찰이 뒤따르지 않은 가운데 단순히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야만의 온상은 그대로 보존한 채 아름답게 치장된 투쟁의 역사는 이미 박물화된 과거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의 역사적 투쟁은 난무하는 정치적 구호와 피비린내는 공포의 현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5공 세력에 대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 정책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에서, 산업사회에서의 지식인의 자기소외 또는 관념적인 신학문제로 주제의식이 추상화된 것도 통치공학적 관점에서 추진된 권력자의 용서와 화해 정책에 영향을 받은 문약한 한 소설가의 정신세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에서 소재를 빌려온 것으로 알려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 역시 소비주의적 세태만 부각시켜 실제 현실 속의 지방도시민의 구체적인 현실성을 탈각시켜버린 것도 당시 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자기모순적인 지배이념에 깊이 침윤된 전직 장관 이창동 감독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리얼리즘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이 영화에 대해 호평 일색이었던 평단의 현실에서 시대의 어둠이 얼마나 짙은지를 실감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영화 말미에 쓸모없이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땅 한 조각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조금의 위안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1980년 5월의 광주를 통해 우리가 오늘날 다시금 상상해보고 재현해보아야 하는 것은 국가권력이 광주 지역에서 물러난 5일간, 사회에서 천덕꾸러기로 취급되던 광주의 “못난” 민중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통치했으며 어떻게 자신들이 입은 역사적 상처를 어루만졌는가 하는 점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은 “역사의 쓰레기”에 쓸모없는 것으로 묻혀버렸다. 저자에 따르면, 황지우가 <오월의 신부>를 통해 쌓아올린 장엄서사는 “모퉁이가 깨지고 때가 묻은 벽돌들은 건축자재로 등외판정을 받아 화사하고 장엄한 기념물의 뒤편으로 치워지거나 땅속에 파묻”힘으로써만 가능한 건축물이다.

  조지 오웰이 글을 쓰는 이유로서 꼽는 두 번째, 세 번째 동기는 각각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충동이다. 오웰이 말하는 미학적 열정이란 낱말의 배열을 다듬고 플롯을 짜고 이야기의 리듬감을 살린다는 식의 형식주의적 열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개인의 멜로드라마적 사랑 이야기와 ‘오월 광주’라는 역사적 사건의 비극성을 잘 버무리고 이를 조명, 음향, 무대장치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서 연출한 <오월의 신부>는 황지우의 미학적 열정을 잘 보여준다. 있었던 사실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작가적 충동--미학적 열정--은 사실은 작가 개인에게 너무나 자연스런 원초적 본능과 같은 것이므로, 조지 오웰처럼 정치적 성향이 강한 작가조차도 자신은 천성적으로 글을 쓰는 다른 모든 이유를 능가한다고 고백할 정도로 미학적 열정이 작가에게 글을 쓰는 이유로서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격동기를 살아가는 역사적 인간으로서 오웰에게 가슴 속에 숨어있는 미학적 열정만이 지고의(至高) 덕목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정지창은 아직도 역사적 현재로 살아 숨쉬고 있는 ‘오월 광주’를 아름답게 재현하는 것만으로 황지우가 작가의 소명을 다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지창에게 <오월의 신부>는 영화 <타이타닉>이나 tv 드라마 <모래시계> 같은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대중적 소비 상품 목록에 속하는 그런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 정지창의 글쓰기는 일면적인 사실만을 갖고 작품의 진정성 전체를 폄훼할만큼 편벽하지 않다. <오월의 신부>에 대한 논평 글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패자의 시체에 성스러운 아름다움의 후광을 그려주고 쓰레기 더미에서 야만의 흔적을 닦아내어 화사한 장엄탱화를 빚어내는 것은 하늘이 작가에게 부여한 재능일진대 그가 치열한 고심참담의 고통 끝에 빚어내는 아름다운 착각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한 것인가.” 이것은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황지우의 <오월의 신부>는 승자의 기록이다, 황지우의 미학적 열정과 작품이 미처 담지 못하고 있는 역사적 진실은 서로 충돌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채 쓸모없는 것들로 취급되는 패자들의 역사적 진실이 이 작품 속에 온전히 담겨 있는가--이러한 비판과 질문을 통해, 이 책의 첫 번째 에세이 “‘광주’를 위한 장엄탱화: 황지우의 <오월의 신부>”는 이 작품이 이른바 시민의 승리라고 일컬어지는 민주화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퇴행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글을 맺는 결어 부분에 와서 돌연 비판의 날은 거두어지고 그 자리에 미학적 환영의 사회학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수사가 들어서는 것으로 글은 끝을 맺는다. 반전은 서스펜스가 있는 스릴 만점의 드라마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요건이지만 원래 비평 글이라는 것 자체가 남의 작품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장르의 성격상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마지막 순간 작품의 효용성을 인정해주는 태도는 작가 황지우에 대한 배려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관람하며 감동을 느꼈을 독자들이 비평 글을 읽으며 느꼈을 긴장감을 완화시켜주고자 하는, 말하자면, 독자들에 대한 배려의 자세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런 태도는 대중들과 같이 호흡하고자 하는 공감의 자세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칼럼 형식의 글은 엄숙한 폼을 잡는 학술적이거나 이론적인 글과는 달리 애초부터 대중들과 호흡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는 글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글은 수천년 간에 걸쳐 진화되어온 농경문화로부터 비롯한, 산업화로 왜곡되고 비뚤어지기 이전의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런 문화와 언어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가령,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라는 에세이를 보면 영어 공용화론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가 견지되고 있지만, 그 비판의 근거는 무슨 대단한 사회경제학적이고 문화론적인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 본연의 깊은 심성 속에 뿌리내려 있는 ‘말의 본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신념에 있는 것이다. 서양을 모델로 하는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이 땅으로 건너온 서양 언어는 한국 근대사를 왜곡시키면서 동시에 자연스런 언어 사용법의 왜곡을 가져왔다. 우리의 모습을 똑바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그릇된 인식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그릇된 말의 사용법을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온전하지 못한 말의 사용법을 지적하는 저자의 비평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뜻하지 않게--칼럼집이라는 것이 보통 쉽고 평이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보면 “뜻하지 않게”--제도권의 권위에 기대어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안이한 의식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비평적인 힘을 그의 글에서 느낄 수 있다. 가령, 성장인가 분배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보수인가, 좌파인가 우파인가, 좀더 실감나는 ‘전문용어’를 사용하자면, 좌빨이냐 수꼴이냐 하는 식의 도식적인 이분법으로 세상의 질서와 모습을 나누는 태도는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제도권과 거기에서 영향받는 보통사람들의 정파적 가치관에 붙여준 이름이지만, 이런 식의 명명법은 세상을 제대로 설명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이 강요하는 도식에서 벗어나야 볼 수 있는 진짜 세상을 가려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가령, 저자는 일견 제도권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명진 스님의 정치적, 사회적 행동과 말의 맥락을 보여준다. 스님의 행위를 그의 슬픈 개인사 전체 맥락에서 보면 진보니 보수니 하는 낡은 이념의 용어가 얼마나 거짓된 말인가가 드러난다. 저자는 스님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허언필망(虛言必亡), 거짓말하는 자, 반드시 망한다.” 거짓 언어의 위선과 치명성을 지적하는 저자의 진솔한 글을 접하며 우리는 이념적으로 도식화된 거짓 언어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세계--혈육의 예기치 않은 슬픔 앞에서도 먹어야 살고 억울하면 다툼이 생기고 심지어는 사소한 일에도 투정을 부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세계--를 다시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를 가두고 있는 거짓 이념의 감옥이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경제 전문가들의 용어인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말이 있다. 모순어법은 반드시 시인들만의 전유물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 마이너스 성장 같은 정반대의 개념들을 억지스럽게 하나의 틀 속에 묶어서 사용할 수 있고 이를 우리가 별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이 경제는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는--또는 필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념에 우리 모두가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경제는 무조건적인 성장이 아니라 순환의 사이클 위에 놓여있어야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는다. 경제성장은 돈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소중한 가치와 생태계의 토대를 갉아먹음으로써 멀지않은 장래에 인류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는 파국에 대한 상상을 불가능하게 한다.

  때로 저자는 잘못된 맥락에서 사용되는 어휘의 제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 가령, 어느 tv 드라마에서 최상류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의 가치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던 “한 땀 한 땀”이라는 표현은 그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어느 순간부터인지 고가사치품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수사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진정한 문화는 대자본의 힘과 국가주의적 권위의 반대쪽에 있는 삶의 주체들의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고 그러한 노력의 지극함을 표현하기 위한 수사로서 저자는 “한 땀 한 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제는 정치적 구호처럼 사용되는 바, “우리가 남이가” 같은 지역주의에 근거한 패거리 정치 의식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표현도 희망버스 같은 시민행동에 깃들여 있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원래의 표현법으로 되살려 보여주기도 한다.

  오래된 대중가요의 가사의 한 구절이기도 한 <오늘도 걷는다마는>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현실 속에서 대중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에 향유하고 싶은 어떤 자유의 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저자 정지창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날카로운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그는 대중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평민적인 풍모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서평 글의 첫대목에서 언급한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로서 남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순전히 속물적인 이기심을 꼽는다. 그 사람이 지식인이든, 성직자든, 평범한 소시민이든 사람인 이상 그러한 이기적 욕구 앞에 우리는 솔직해지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런 인간으로 살아가는 조건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가 글을 쓰는 이유의 전부가 되어 아무 의미없는 미사여구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수식어에 몰두할 때 글을 쓰는 마지막 이유인 정치적 목적, 즉 좋은 삶과 좋은 세상을 만들고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은 오간 데가 없기 마련이라고 오웰은 말한다. 오웰이 존경하였던 영국의 선배 작가 D.H.로렌스는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남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개성(personality)과 차별성만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작가 정지창은 여유있는 교수로서 수시로 차를 몰고 유람하기를 좋아한다는 고백을 이 책에 남기고 있다. 생태주의자들의 비판을 의식하면서. 그러나 공동체로서의 우리 사회가 나아갈 수 있는 미래의 문을 열어젖히기 위한 비판적 사유와 틀린 것에 대한 야유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여기서 작가 정지창이 누리는 여유는 사회가 돌아가는 속도로부터 자유를 찾고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대학 교수들보다 여유가 없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구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그’ 여유와 야유 정신일 것이다.

 
 





[책 속의 길] 70
이승렬 / 영남대 영문학과 교수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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