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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걱정하셨던...

기사승인 2013.05.03  12: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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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정 / 『권정생의 글 모음 -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이철지 엮음 | 종로서적 | 1986)


아이에게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 한번 안 읽어준 부모가 몇이나 될까? 백만번을 봐도 참 좋은 책,「강아지똥」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색다른 뜻을 전해준다. 그러고 보니, 권정생 선생님 가신지도 벌써 여섯 해가 되었다. 작품보다 더 심금을 울리는 그 분의 생애는 언제나 마음을 숙연케 한다.

 
 

‘강아지똥’처럼 상처입고 버림받았지만 스스로 벼리고 또 버리면서 별이 된 숱한 ‘몽실이’와 ‘분들네’, ‘수동댁’... 분명 그들 중 한 사람이었을 권정생 선생님.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그 분이 떠난 빌뱅이 언덕의 조그만 흙집을 바라보며 그 분의 이름 앞에 ‘성자’ 또는 ‘성인’이란 수식을 붙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 권정생 / 사진 출처. 창비
나는 선생님과 딱 두 번 만났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니까, 1987년이나 1988년쯤 됐겠다. 당시에는 대중문학강좌가 자주 열리고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온 나라를 다니면서 열띤 문학토론을 하던 시절이었다. 한 문학 강좌에서 아동문학을 다루면서 이오덕 선생님을 초청했는데 그 때 권정생 선생님이 같이 오셨다.

왠지 들떠있는 이오덕 선생님이 권정생 선생님을 소개했을 때, 나는 정말이지 내 눈을 의심했다. 그날 사람들 앞에 나타난 유명한 아동 문학가는, 기름기 하나 없는 주름진 얼굴에 허름한 옷차림에다 고무신을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남루한 행색이었건만 순간 사람들은 충격 속에서 그분의 가난하고 정직한 삶의 진수를 읽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마음 속에 ‘권정생’이란 이름은 깊이 각인되었다.


돌아가시기 네 해전, 그러니까 2003년 봄에는 일부러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환경운동을 함께하는 동료들과 모처럼 꽃놀이 가자고 들떠있을 때였는데, 내가 꼬드겨서 지나는 길에 들른 것이다. 그즈음 건강이 더욱 안좋아진 데다 하필 황사가 지독한 날이어서 선생님은 코딱지만한 방에 누워계셨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라 모두 조심스럽게 사람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비좁은 방에 빼곡히 무릎을 조이고 앉았다. 환경운동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왔다고 인사를 드리니 선생님이 “그래요?”하시면서 몇 가지 말씀을 하셨다.

“요새는 농촌도 쓰레기가 너무 많고 땅이 다 죽었니더. 도로가 다 파헤쳐가꼬 산도 죽었고예.” 하시면서 "그래, 요새 환경운동 우예 하니껴?" 하신다.

 
 
▲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권정생 저| 종로서적| 1986)
우리는 묻는 뜻을 몰라서 선뜻 대답을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이어서 "사람들은 도로 난다고 반대해 놓고 도로 생기면 차 몰고 많이들 댕기데요. 그래, 환경운동 우예 하니껴?" 하신다.

대뜸 정수리를 얻어맞은 우리들은 한마디도 못하고 부끄러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빈 손으로 덜렁 갔다가 어떻게 그 집을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목에 황사때나 벗기자고 삼겹살을 우걱우걱 씹어 먹을 때도 다들 말이 없었다. 평생 병마와 싸우면서 조탑동을 벗어나지 않았던 분이 어찌 그리 세상을 꿰뚫어보시는지...

선생님이 그리운 날에는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라는 글을 다시 읽어본다. 짧은 수기에는 상처 많고 아픔 많았던 선생의 삶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원고지 몇 십 쪽 분량밖에 되지 않는 이 귀한 수기를, 나는 선생님이 피로 쓰신 다른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사후 선생님의 생을 다룬 숱한 어린이 책, 청소년 전기, 평론집을 살펴봐도 이 수기만큼 깊이와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1986년 종로서적에서 펴낸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란 글 모음집에 맨 처음 이 글이 실렸는데, 이미 오래전에 절판되어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원종찬이 2008년에 창비에서 엮어낸 「권정생의 삶과 문학」에 이 수기가 수록되어 있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 2007년 3월 31일 오후6시10분 권정생


어린이날이 코 앞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어린이들을 걱정하셨던 선생님.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를 아이들에게 읽히고 필사해 볼까 한다.

 
 





[책 속의 길] 99
이은정 / 평화뉴스 객원기자

평화뉴스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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