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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골·코발트광산...이름도 무덤도 없이 64년

기사승인 2014.10.03  12: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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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골 5천여구 방치 /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발굴 위한 특별법 제정해야"


 
 
▲ 한국전쟁 전후 국가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2천여명의 유골이 묻힌 경북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광산 제2수평갱도(2014.10.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일 경북 경산시 평산동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끝 없는 굴 안. 차가운 공기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습기가 가득하다. 허리도 펼 수 없는 낮은 굴에 어둠을 밝힌 것은 위태롭게 매달린 전구 몇알. 진흙 위에 놓인 가느다란 레일을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채이는 물의 깊이가 깊어진다.

레일 위에 놓인 수레가 멈춘 곳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물웅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웅덩이 주변에는 굴에서 떨어지는 모래와 바위의 유실을 막기 위한 철골몰이 엉성하게 놓여있다. 한기가 서린 웅덩이 위 철골물에는 까맣게 변해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사람의 손가락 유골 4점이 놓여있다. 64년전,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국가기관에 의해 희생된 2천여명의 민간인 유골이 잠든 경산 코발트광산의 제2수평갱도다.

 
 
▲ 제2수평갱도 철골물 물웅덩이 아래 유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2014.10.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철골물 위에 놓인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손가락 유골 4점(2014.10.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제2수평갱도를 따라 위로 20분정도 올라가자 파란 슬레이트로 허술하게 방치된 제1수평갱도가 나타났다. 제1수평갱도 입구는 발목까지 물이 차올라 사람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런 조명도 레일도 설치되지 않아 유골 수습은 중단된 상태다. 입구에는 빛바랜 노란 리본들만 나뒹굴고 있을 뿐이다.

제1·2수평갱도와 이어진 산 위의 수직갱도는 64년전 국가의 만행이 자행된 모습 그대로다. 몇 년 전 유골 발굴 작업을 위해 설치된 철골물과 사다리, 철창만  녹슨 채 방치돼 있다. 민간인을 사살하고 떨어뜨린 갱도 위. 그 철창에 가려진 시커먼 구멍만이 역사의 그늘을 나타내고 있다.  

 
 
▲ 입구까지 물이 가득 찬 경산 코발트광산 제1수평갱도(2014.10.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민간인들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진 코발트광산의 수직갱도(2014.10.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의원(73.경산) 할아버지는 9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남로당 가입을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희생됐다. 이후 박 할아버지는 연좌제에 시달렸다. 아버지까지 억울하게 돌아가신 마당에 살아보려 호적지도 옮겨보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 없었다. 아버지 죽음의 진실도 알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 정부가 아버지 죽음이 부당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가 묻혔던 코발트광산에서 매년 다른 유족과 합동위령제를 지낸다.  

박씨는 "빨갱이 누명과 연좌제 사슬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한 맺힌 세월을 살아왔다"면서 "국가에 의한 학살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유족들의 응어리진 고통은 정부의 진심어린 용서와 적극적인 유해 발굴을 통해서만 해결된다"고 말했다. 

 
 
▲ 대구 달성군 가창골의 가창댐에도 민간인 희생자 3천여명이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2014.10.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같은 날 찾은 대구 달성군 가창골의 가창댐. 1959년 댐이 들어서 지금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뽐내지만 이 곳 역시 민간인 3천여명이 사살된 청산하지 못한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이다. 60여년전 사상범으로 몰려 국가에 의해 희생된 이들은 이름도 무덤도 없이 2014년 현재까지 댐 아래 잠들어 있다.

김의현(63.청송)씨는 1950년 7월 아버지를 잃었다.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쌀을 준다던 정부 말에 보도연맹에 가입했지만 아버지는 그 이유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들은 어느새 25살에 집을 나선 아버지 나이를 훌쩍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 유골은 찾지 못하고 있다. 가창골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고 추측할 뿐이다. 김씨는 "국가도 원망스럽지만 불효를 저지르는 나 자신도 원망스럽다"며 "하루 빨리 국가의 유골 발굴 작업이 진행돼 아버지를 편안히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 '제64주기 한국전쟁 전후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2014.10.2.경산시립박물관)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월항쟁' 68주기를 맞아 '10월항쟁유족회'와 '10월문학회',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는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터와 관련된 대구경북지역 순례를 떠났다. 이들은 경산 코발트광산과 대구 가창골, 대구 도심 일대를 2일 오전 9시부터 9시간가량 기행하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이날 순례에는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를 포함한 유족 4명, 시민단체 활동가, 시인 등 20여명이 동참했다.

순례의 안내를 맡은 함종호 4.9인혁재단 상임이사는 "국가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국민 수 천, 수 만명을 정부가 60년 넘게 방치하고 있다"며 "정치적 이유로 유골을 수습하지 않는 것은 희생자를 두 번 죽이고, 유족을 두 번 울리는 것이다. 더 이상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지 말고 영구적으로 유골을 발굴하고 이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터와 관련된 대구경북지역 순례(2014.10.2.가창댐)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같은 날 오후 '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와 '한국전쟁 전 경산유족회'는 경산시립박물관에서 '제64주기 한국전쟁 전후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이 합동위령제는 올해로 15번째 진행됐으며 유가족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가량 진행됐다. 유족들은 ▷집단학살에 대한 사죄와 ▷보상·유해발굴·지역단위 추모공원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제2의진실·화해위원회 설립 ▷역사교과서에 반전·평화·인권교육 강화를 정부에 촉구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 관계 보고서'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이 보고서에서 이승만 정권 당시인 1950년 7~8월까지 우리나라 군인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 3천여명이 코발트광산에서 집단사살됐다고 밝혔다. 주로 경산과 청도지역의 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의 수감자들로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에 협조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과거사위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가창골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민간인 2천~3천여명이 집단사살됐다고 보고서에 나와 있다. 이후 정부와 시민단체 유족들은 모두 6차례에 걸쳐 유골 5백여구를 발굴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과거사위의 활동이 중단되고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과 관련된 예산지원도 끊겨 유골 발굴 작업은 현재 모두 중단된 상태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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