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무 많은 배움터지킴이, '봉사'일까 '노동'일까?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2.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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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6백여명, 하루 1만원...노동청 "상시근무ㆍ퇴직금 지급" / 교육청 "자원봉사 개념"


대구 수성구 A초등학교 배움터지킴이 이형도(가명.65)씨는 2년째 이 학교 지킴이로 위촉됐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전직 경찰 신분으로 지킴이 활동을 시작했지만 2년간 주차 돕기, 방문자 안내 등의 잡무만 맡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일 8시간 일하며 기대한 학교폭력 예방 활동은 좀처럼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씨가 지난해 지킴이 활동을 하고 받은 돈은 일당 3만원으로 한달 봉사수당은 66만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최저임금 5,120원에도 못 미치는 시급 3,750원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씨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올해도 지킴이 활동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씨는 올해부터 하루 4시간 근무에 일당 1만원으로 지킴이관련 규칙이 변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전년도 대비 활동시간은 절반, 시급은 3,750원에서 2,500원으로 준 셈이다. 올해 최저임금 5,580원에 비교하면 절반도 안되는 액수다.  

이씨는 12일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애초 자원봉사자 신분이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는 것을 묵묵히 참았지만 애초 최저임금도 안되는 수당을 더 줄이는 것은 노동착취나 다름없다"며 "지킴이가 하는 일은 학교경비랑 똑같은데 이럴거면 아예 노동자성을 인정해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대구 동구 B중학교 지킴이 김동수(가명.64)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직 군인인 김씨는 3년간 같은 학교 지킴이로 활동하며 학교안전 활동보다 잡초 뽑기, 나뭇가지 치기, 운동장 돌 고르기, 쓰레기 치우기 등의 일을 해왔다. 이 활동에 회의를 느낀 김씨는 지난해 "지킴이 노동자성을 인정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 내고 이를 인정받아 학교로부터 퇴직금을 받았다. 김씨는 "배움터지킴이는 봉사라는 이름의 노동착취"라며 "대구는 타지역보다 그 강도가 더 심하다"고 지적했다. 

배움터지킴이와 대구 경찰들이 학교안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 사진. 대구교육청
배움터지킴이와 대구 경찰들이 학교안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 사진. 대구교육청

학교 '배움터지킴이' 지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킴이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처우개선"을 주장한 반면, 교육청은 "자원봉사자일 뿐"이라며 "처우개선은 무리"라고 맞서고 있다. 

대구교육청은 2005년부터 10년째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퇴직 경찰, 군인 등을 대상으로 '배움터지킴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은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매년 새학기 각 학교가 모집공고를 내 위촉한다. 예산은 교육청이 전액 지급한다. 지난해 대구 440여개 초.중.고등학교 지킴이는 모두 664명이다. 

대구 한 초등학교가 낸 '배움터지킴이' 봉사자 채용 공고 / 캡쳐.대구교육청 홈페이지
대구 한 초등학교가 낸 '배움터지킴이' 봉사자 채용 공고 / 캡쳐.대구교육청 홈페이지

그러나 교육청이 지킴이들을 각 학교에 배치하고 역할을 명시하지 않아 지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게다가 최저임금도 안되는 봉사수당만 임금 명목으로 지급해 지킴이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는 "학교 잡무, 경비를 맡는 경우가 많다"며 "노동자성을 인정해 퇴직금 등의 처우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대구 10여명의 지킴이들이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퇴직금"을 요구했다. 당시 대구노동청은 "하루 8시간 상시지속 근무로 인정된다"며 "퇴직금 지급"을 명령했다. 
  
이처럼 지킴이들에 대한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해석이 나오자 대구교육청은 올해부터 배움터지킴이 명칭을 '학교안전봉사단'으로 바꾸고 이와 관련된 규칙도 변경했다. 전에는 하루 8시간 미만 근무에 3만원을 자원봉사 수당 명목으로 지급했지만 올해부터 근무시간은 하루 4시간 미만, 수당은 일일 1만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근로시간을 이유로 노동자성이 인정되자 아예 근로시간 기준자체를 변경한 것이다. 위촉 대상도 퇴직 공무원만 뽑던 이전과 달리 성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펼치는 대구 배움터지킴이들 / 사진.대구교육청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펼치는 대구 배움터지킴이들 / 사진.대구교육청

이에 대해 이동훈 대구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생활지도담당자는 "배움터지킴이는 생활이 어렵지 않은 퇴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학교안전 자원봉사자 개념으로 도입한 제도"라며 "애초 자원봉사자에게 식대비와 교통비 명목의 수당을 준 것도 교육청 예산으로 빠듯했는데 노동자성까지 인정해달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또 "지킴이 역할은 근무나 노동이 아닌 봉사활동"이라며 "본인이 원치않으면 그만두면 된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분들이 권리만 내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때문에 "봉사수당을 증액해달라거나 퇴직금을 지급해달라거나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로 들어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모두 배움터지킴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은 하루 8시간 미만 근무 일일 4만원, 경기도는 하루 3시간 미만 2만원, 인천은 8시간 미만 3만원, 경북은 8시간 미만 3만5천원, 울산은 8시간 미만 3만8천원을 수당으로 지급한다. 1만원을 지급하는 곳은 대구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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