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대구 미혼모 쉼터, 갈 곳 없는 엄마와 아이는...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 입력 2015.06.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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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림원' 30일 폐지, 새 쉼터는 공사 중ㆍ수용 인원도 제자리..."지원 절실"


지난 5월 11일 임신 2개월째인 30대 미혼모 A씨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부모님 강요에 못 이겨 집에서 쫓겨났다. 집에서 나온 A씨는 홀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대구지역의 유일한 임신 미혼모 쉼터 '혜림원'을 가봤다. 그러나 6월 30일부터 혜림원이 문을 닫아 머무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역내 관공서 로비를 돌아다니며 잠자리를 해결했다. 밥은 제때 먹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A씨는 우연히 대구미혼모가족협회를 알게 됐다. 그곳에서 혜림원 운영종료 뒤 새 쉼터 '푸름터'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공사 중이고 입소 인원도 적어 A씨는 그곳에서도 지낼 수 없었다. 때문에 미혼모가족협회에서 소개받은 개인 쉼터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당장의 문제는 해결했지만 앞으로의 냉혹한 현실이 막막했던 A씨는 결국 아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구시청 앞에서 '미혼모 쉼터 대책 마련을 위한 1인 시위' 중인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2015.6.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청 앞에서 '미혼모 쉼터 대책 마련을 위한 1인 시위' 중인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2015.6.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유일한 미혼모 쉼터 '혜림원'이 설립 29년만인 오는 6월 30일 문을 닫아 갈 곳 없는 미혼모들이 위기에 놓였다. 신설 쉼터는 공사 중이고 입소 인원까지 제한돼 예비 엄마들이 고통받고 있다.  

대한사회복지회 산하 대구혜림원(원장 박미향)은 출산 전 미혼모가 생활할 수 있는 대구경북 최초의 미혼모 쉼터로 1986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지어졌다. 지금까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미혼모 6천여명이 거쳤고, 대구시 위탁운영시설로 연간 운영비와 인건비 등 5억원정도 예산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혜림원은 설립 29년만인 6월 30일로 운영을 종료한다. 정부가 7월부터 미혼모에게 입양을 권유하는 혜림원 같은 곳의 운영을 금지하는 '한부모가족지원법'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수성구 황금동 여성청소년지원시설 '가톨릭 푸름터'(원장 이명식)를 새 쉼터로 위탁운영하고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대구지역 유일한 미혼모 쉼터 혜림원의 운영중단 공고 / 캡쳐.혜림원 홈페이지
대구지역 유일한 미혼모 쉼터 혜림원의 운영중단 공고 / 캡쳐.혜림원 홈페이지


하지만 혜림원 운영종료에 맞춘 신규 쉼터 리모델링 공사가 20여일 가까이 지연돼 7월 중순까지 혜림원에 머무르던 미혼모들과 아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게 됐다. 또 신규 쉼터 수용 인원이 50명으로 제한돼 미혼모들이 모두 입소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5월 기준 혜림원에는 36명의 미혼모가 머물렀다. 그러나 운영종료 등으로 6월 26일 현재 미혼모 5명과 아이 3명만 남았다. 한달 간 미혼모자 28명이 퇴소했다.

새 쉼터 최대 수용 인원은 혜림원과 같은 50명이다. 지난 30년 가까이 수용 인원 수치가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특히 비상 사태에 대비해 통상적으로 최대 수용 인원의 80%만 입소시키는 점을 고려하면 새 쉼터 입소자는 35명에서 40명 안팍이다. 입소 가능 기간도 최대 1년이다. 앞서 A씨와 같은 임신 미혼모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구시는 6월 중순에서야 미혼모들의 임시거처 마련에 나섰다. 임시거처는 달서구 월성동과 수성구 지산동의 아파트, 빌라 등 모두 3곳이다. 그러나 이미 혜림원을 나간 엄마와 아이들은 연락이 닿지 않아 손 쓸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대구 새 미혼모 쉼터 '가톨릭 푸름터' / 사진 출처.가톨릭 푸름터 홈페이지
대구 새 미혼모 쉼터 '가톨릭 푸름터' / 사진 출처.가톨릭 푸름터 홈페이지

김은희(45)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26일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대구시는 혜림원 운영정지 후의 대책 수립에 관심이 없었다"며 "2012년부터 쉼터 공백 문제를 제기했지만 노숙인과 청소년 쉼터에서 임시로 지내라는 어이없는 대책만 내놨다"고 했다. 또 "대구 유일한 미혼모 새 쉼터 수용 인원이 50명인 것은 너무 적다"면서 "최소 100명으로 확대해야 한다. 지원이 너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 대표는 지난 25일부터 대구시청 앞에서 "미혼모 쉼터 수용인원 확대와 지원 확충"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홍희정 대구시 여성청소년가족과 담당관은 "3월 여성가족부로부터 한부모가족지원 복지시설 기능 보강비를 지원받고 5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며 "생각보다 규모가 커 완공이 늦어지고 있지만 노력 중"이라고 했다. 또 수용 인원에 대해서는 "미혼모 쉼터의 특성상 입소와 퇴소가 잦은 편이고 자유롭다"면서 "출산 후 본가로 가거나 남편을 만나 퇴소하는 경우가 많아 현재 수용 인원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북 경산지역 미혼모시설 '샤론의 집'도 혜림원과 같은 이유로 6월 30일 운영을 종료한다. 때문에 이 곳에 있는 미혼모 4명과 아이 4명 등 모두 8명은 대구 새 쉼터가 완공되고 입소를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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