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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수난사 만주, 일송정은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기사승인 2015.08.07  09: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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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상실, 현재의 정체...남과 북의 미래는 어떡할 것인가?


7월 24일부터 30일까지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가 기획한 광복 7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40여명과 더불어 만주를 다녀왔다. 4번째 만주행이다. 모든 여행이 기대와 설레임을 갖게 하지만 만주기행은 이에 엄숙함을 더한다. 왜냐하면 만주는 우리민족에게는 단지 중국 동북지역을 뜻하는 지역명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 여순감옥의 안중근 의사 최후의유언, 광복 70년이 되었거만 아직 그의 유해는 고국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 사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한 안중근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사형당했다. 지금의 분단된 조국을 보며 그는 어떤 심정일까? / 사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국경의 밤


만주는 조선말 세도정치의 학정과 수탈에 못 견딘 농민들이 관권을 피해 강을 건너 살러간 땅이였고 일제 강점 이후 독립운동을 위해 고향을 떠난 항일전사들의 근거지였으며 일본의 대륙침탈정책에 따라 만주국 수립이후 강제 이주당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말 민족의 수난사를 고스란히 간진하고 있는 곳이 바로 만주이다. 또한 우리 민족의 발원지이며 한때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그 유적들이 남아 있는 강역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광복 70년을 맞아 만주땅을 찾아 만주땅에서 쓰려져간 조선의 혼백들에게 잔 한잔 올리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 생각해 만주기행을 기획하게 되었다.

아하, 無事(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男便(남편)은
豆滿江(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國境江岸(국경강안)을 警備(경비)하는
外套(외투) 쓴 검문 巡査(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奔走)히 하는데
發覺(발각)도 안 되고 無事(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密輸出馬車(밀수출마차)를 띄워 놓고
밤 새 가며 속태이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脈(맥)이 풀려져
파! 하고 붓는 魚油(어유) 등잔만 바라본다.
北國(북국)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 김동환의 <국경의 밤> 중 -
 
시인 김동환이 순사의 눈을 피해 발각 안되고  무사히 강을 건너기를 바라는 독립군 남편을 둔 아내의 마음을 노래한 <국경의 밤>. 다시 찾은 국경의 밤은 이제 강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단동의 밤은 휘항찬란한 네온에 쌓여있지만 신의주의 밤은 불빛 하나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남북관계가 단절된후 이제 강건너 보아야 하는 북녘땅의 모습은 물론 4년전과 달리 도로공사의 모습도 보이고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으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단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분단을 이용하는 중국, 정체된 남북의 발전

단순히 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의 발전상의 차이가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남북관계가 정상으로 발전했으면 남북철도연결사업이 진전되어 동대구역에서 서울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북녘땅을 지나 압록강을 건너 왔을 곳을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답답한 것이었다.

이 답답한 현실을 이용해 중국은 남한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벌이에 혈안이었다. 북녘땅으로 한발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이용해 압록강 유람선을 북녘땅 가까이 몰아 갔고 조중국경선을 넘고 싶은 마음을 이용해 중국의 도문에서 북한의 남양으로 가는 다리의 변경선을 넘도록 허용했다.

 
 
▲ 중국의 도문시와 북한의 남양시를 잇는 다리 위 변경선 너머. 북녘을 통해 이 다리로 중국을 올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지난번 찾았을 때는 변경선을 조금도 넘을 수 없도록 군인이 엄격히 관리했지만 이제는 변경선 관리도 민간인이 하고 넘어가는 것도 허용되었다. 조금이라도 북한에 다가가고자 하는 한국민들의 마음을 이용한 중국인들의 상술이 얄미웠다. / 사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경의선이 시베리아 대륙철도와 중국횡단철도와 연결되면 누릴 수 있는 현재의 번영이 좌절되고 발전이 정체되는 사이 중국은 남북분단을 이용해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었다. 남북관계가 정상적으로 진전되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발전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남도 북도 정체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 압록강변의 북한상인, 압록강 유람선이 북한쪽으로 다가가자 통통배를 타고 와서 물건을 팔았다. 조중 군사당국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 어쨌든 북도 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사진. 김두현

과거사 왜곡, 민족사의 상실 

남북분단과 관계 약화는 현재의 기회만 놓치게 하지 않는다. 중국의 과거사 왜곡에도 대응할 힘을 잃게 한다. 압록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구려 성으로 알려진 박작성은 현재 호산산성이라는 이름의 중국성으로 복원되어 있고 중국은 만리장성의 출발을 산해관에서 이곳으로 확장하는 왜곡을 저지르고 있다. 유리왕 21년 졸본에서 국내성(집안)으로 수도를 이전한 뒤 쌓은 환도산성 역시 이상한 중국식 산성으로 복원되고 있었다. 장수왕릉으로 알려진 장군총 역시 마찬가지이다. 장수왕릉이라는 표식은 없고 다만 고구려 20대 왕의 무덤이라는 표시만이 있고 보존상태는 물론 관리상태도 엉망이었다. 집안 유역의 고구려 왕성, 왕릉과 귀족묘 등 42곳이 2004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대부분은 한국 사람들이었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기에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도 간도땅의 귀속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도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에 대한 복원과 관리문제에도 힘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엄연히 현존하고 있는 만주땅의 우리민족사가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 저 문을 나가지 못하고 죽은 항일투사들이 얼마나 될까. 해방 바로 전날에도 여순감옥에서는 독립투사들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 사진. 김두현
 
 
▲ 용정시 들머리 언덕에 있는 운동주 시인의 묘, 풀 한포기 없는 민둥무덤이라 서글프다. / 사진. 김두현

 더욱 큰 문제는 남북분단과 남북관계의 악화로 인해 우리민족의 미래 비전마져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력을 앞세운 중국의 굴기와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재무장 움직임에 우리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혹자들은 조선말 열강들의 침탈로 국권을 잃었던 상황에 비교하고는 한다. 그때와 다른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도 북도 당시의 조선과 달리 그것이 경제력이든 군사력이든 국가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때와 달리 나라가 둘로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면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도 결코 우리의 목소리를 가볍게 볼 수 없으며 아무리 일본이 재무장을 한다 해도 한반도를 쉽게 넘볼 수 없다.

분단과 대결, 해란강을 굽어 보는 일송정은...

하지만 남과 북이 지금처럼 적대적 대결로 일관한다면 그 틈을 타 주변 열강들은 자기의 이익을 챙길 것이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면 열릴 수 잇는 대륙과 해양의 지정학적 유리함을 활용한 정치군사적 완충지대와 경제적 허브의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 항일기행 3일째 찾은 백두산 천지, 비와 안개속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마침내 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연 민족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웅장함과 기묘함을 갖추고 있는 천지였다. 북한땅을 통해 본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지금은 중국땅을 통해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 사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 항일기행 4일째 찾은 용정시 입구의 일송정, 용정과 백두산을 둘러보기 위한 한국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시기임에도 이날 우리 일행외에 일송정을 찾는 한국관광객은 없었다. 독립을 찾기 위해 말달리던 선구자의 정신을 쫓아 이제 통일을 길로 가야 하지 않을까. / 사진. 김두현

남과 북의 대결로 과거의 상실과 현재의 정체, 미래의 박탈로 갈 것인가? 남과 북의 협력으로 과거의 복원과 현재의 발전, 미래의 성취로 갈 것인가? 네 번째 찾은 만주에서 해란강을 굽어 보는 일송정의 소나무가 우리에게 끊임 없이 묻고 있었다.

남북분단과 대결은 만주땅의 과거 민족사의 상실, 철도연결과 남북협력으로 인한 대륙으로의 진출과 도약하지 못하는 현재의 정체와 남북과 만주를 잇는 경제공동체의 건설과 동북아 평화의 주도자라는 미래비전을 박탈시키고 있었다.

 
 
▲ 용정시내 대성중학교의 윤동주 시비, 죽는 날까지 한점 부끄럼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사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 의열단의 창립선언문인 조선혁명선언을 쓴 신채호는 1936년 2월 18일, 그는 뤼순 감옥 독방에서 뇌일혈로 쓰러졌으나 방치되었고, 사흘 뒤 감방안에서 혼자 있을 때에 사망하였다. 친일파가 보증을 섰다는 이유로 가석방마저 거절했던 그의 기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 필자 / 사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평화뉴스 김두현 객원기자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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