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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자마저 탈락해 생활고 겪는 '독립운동가' 손녀

기사승인 2016.02.05  13: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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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의병 후손 이모(56)씨, 대구서 일하다 다쳐 지병에 빚까지...생계 막막
'유족 1명' 제한 때문에 연금도, 아들 취업했다고 기초수급도...어떤 지원도 못받아


 
 
▲ 생활고를 겪고 있는 독립운동가 손녀 이호정씨가 대구 자택에서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2016.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일 저녁 대구시 동구 신암동 한 임대주택. 10평 남짓한 공간에 약봉지가 널려있다. 마스크와 의학용 복대도 눈에 띈다. 집 주인이 약간 다리를 절며 나타났다. 독립운동가 손녀 이호정(가명.56)씨다.

이씨의 할아버지(1881.9.28.~1938.5.6.)는 충북 보은 출신의 선비로 1895년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일제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내리자 의병에 참여해 참모 역할을 했다. 단양, 제천 등 전투에 참전해 성과를 올렸고, 1907년 정미7조약 체결 후 일제가 고종황제를 퇴위시킨 뒤 한국 군대까지 해산시킨 것에 반발해 다시 의병으로 항일투쟁에 나섰다. 1931년에는 조선총독에게 침략을 규탄하는 경고문을 발송했고,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름을 남겼다.

광복이 한참 지나고도 유족들은 그의 독립운동 사실을 알지 전혀 못했다. 1985년 일부 기록들이 발견 돼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국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기록된 이씨의 할아버지 독립운동 약력 / 자료.국가보훈처

그러나 할아버지가 지킨 나라에서 손녀인 이씨는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씨의 할아버지도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재산 대부분을 독립운동에 쓴데다 가정을 돌보지 않아 후손들이 경제적 약자로 전락한 것이다. 이씨의 아버지는 농사를 지어 이씨 5남매를 길렀지만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씨는 학교 문턱도 제대로 밟지 못했다.

결혼 이후 대구로 왔지만 15년 전 이혼 후 두 자녀를 홀로 키워야 했다. 막막했지만 가장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기초생활수급자에 선정돼 숨통을 틔었다. 아들과 딸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엄마를 잘 따랐다. 성적 우수 상장도 곧잘 가져와 엄마를 기쁘게 했다.

 
 
▲ 독립운동가의 증손자인 이씨의 자녀들이 학창시절 받은 상장(2016.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몇 년전에는 정부의 '희망키움'이라는 수급자 자립 사업에 신청해 대출을 받아 경북대 근처에 작은 치킨가게도 열었다. 처음에는 장사가 제법됐다. 하지만 지난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가던 중 사고가 나 십자·내측인대가 파열돼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게 됐다. 허리도 척추분리증·협착증, 전방전위증에 걸려 장시간 서 있을 수 없게 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천식 진단까지 받았다. 더 이상 배달을 할 수 없게 됐다. 매출은 곧 떨어졌다. 급기야 올해 1~2월에는 손님이 한 명도 들지 않았다.

대출이자, 전기세, 치료비, 약값, 식비, 교통비. 감당 못할 생활고가 밀려 들었다. 신용카드 3개로 돌려막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미 의료보험료는 지난해부터 연체된 상태고 가게 월세도 석달치나 밀렸다. 지인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리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지 알 수 없다.

궁핍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씨는 올해 기초수급자에서마저 탈락했다. 동사무소를 찾아 하소연 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아들이 취업했다는 이유로 지원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양의무자인 아들의 월급 150만원이 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에 더 이상 수급대상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겨우 직장을 잡아 독립한 아들에게 차마 엄마의 형편을 설명할 수 없었던 이씨는 허탈하게 동사무소를 돌아섰다.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돼 살았던 딸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기는 곤혹스럽다.

 
 
▲ 천식 약을 손에 한움큼 쥔 이씨(2016.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마지막 동아줄로 이씨는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독립유공자 유족 연금이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은 일제 당시 조국 독립을 위해 공헌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에게 국가가 교육과 의료, 취업, 주택 등에 합당한 예우를 해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생활 안정, 복지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게 됐다. 현행법이 독립유공자 유족 손자·녀 가운데 1명에게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후손이 받고 있는 상태라 이씨는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국가의 모든 복지시스템은 독립운동가 손녀의 가난을 구제해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씨는 "적어도 밥은 굶지 않고 살고 싶다"며 "흔히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하는데 할아버지 애국심을 존경하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또 "친일파 후손들은 대대손손 잘먹고 잘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배를 굶고 산다"면서 "국가가 최소한 이런 부분에 부당함은 없는지 확인했으면 좋겠다. 원망은 않치만 자꾸 어두운 마음이 들어 괴롭다"고 한숨을 쉬었다.

 
 
▲ 이씨가 먹는 약봉지가 방 가운데에 널려 있다(2016.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 한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법이 그렇다. 구제할 방안이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다"며 "수급자 가족이 있다면 그분과 합의해 연금을 나누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 가고 있는지 국가가 모든 통계를 갖고 있지 않아 미리 도움을 줄 상황이 못된다"면서 "앞으로 실효성 있는 지원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일보>가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의 모임인 '광복회' 회원 6,831명 전원을 대상으로 생활실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5.2%가 월소득 200만원 이하로 나타났다. 100~200만원 미만이 43.0%로 가장 높았고, 50~100만원 미만은 20.9%, 50만원 미만도 10.3%로 조사됐다. 월소득 200만원 미만 구간에 손자·녀가 79.2% 비율로 가장 높아 가난이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에도 대물림 되고 있었다. 이 조사는 한국일보가 지난해 광복회 회원 전원에게 우편을 통해 설문지를 보내, 회신한 1,115명의 답변을 한국리서치에 분석 의뢰해 진행됐다.

한편,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은 66,000여명으로, 연금 수급자는 전체의 10%도 안되는 5,700여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이들의 생활실태를 전수 조사한 것은 28년 전인 1988년이다.

 
 
▲ <한국일보> 2015년 8월 12일자 1면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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