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을 걷는 여성들'...언론과 남성의 편견을 넘어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6.06.05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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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에 맞선 대구 '달빛걷기' / "OO녀 만드는 언론·피해자 탓하는 남성, 인식전환 절실"


"어딜 쳐다보는 거야. 당신들 보라고 입은 치마가 아니야"
"뭘 입든, 어떤 화장을 하든, 어딜 가든 무슨 상관이야"
"밤길이 당신들만의 것이야? 나도 자유롭게 다닐거야"
"안된다는 말의 뜻은 말 그대로 정말 안된다는 뜻이야"

'밤길이 니꺼냐' 대구 달빛걷기에 참여한 여성(2016.6.4.동성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밤길이 니꺼냐' 대구 달빛걷기에 참여한 여성(2016.6.4.동성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일 밤 10시 대구 동성로. 20~30대 여성들과 남성 20여명이 편견과 차별에 맞서 도심의 밤거리를 행진했다. 메가폰을 잡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여자는 이래야만한다'는 '성고정관념'에 대항했다. 치마를 입은 남성들도 이 행진에 동참했다. 치마나 화장의 문제가 아닌 성별의 문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박수를 치며 지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흘겨보며 반발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달 중순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벌어진 한 남성의 불특정 여성 살인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 담론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전국의 수 많은 여성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살아남았다'는 자조섞인 추모를 스스로에게 보내며 '내가 희생됐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나타냈다.

'여성혐오 반대' 동성로서 밤길을 행진 중인 시민들(2016.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여성혐오 반대' 동성로서 밤길을 행진 중인 시민들(2016.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하철역과 대학가 거리에는 포스트잇과 대자보가 붙었다. '여자라서 죽을 수 없다'는 외침은 계속됐다. 분노를 넘어선 절규였다. SNS에는 여자라 겪은 차별을 고백하는 글들이 넘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추모열기는 '여혐' 여부를 둘러싼 성별대결로 변했다. 피해자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보도를 한 일부 언론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힌 남성들의 불편함으로 논점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여성혐오OUT' 포스트잇을 등에 붙인 한 남성(2016.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여성혐오OUT' 포스트잇을 등에 붙인 한 남성(2016.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여혐이냐 아니냐를 놓고 의미없는 싸움을 하는 동안 여성 대상 강력범죄는 계속됐다. 여자친구, 아내, 여중생, 여교사가 단지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잠을 깨웠다는 이유로, 집에 혼자 있었다는 이유로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남자친구, 남편, 아버지, 동료에게 염산테러나 성폭행 또는 죽임 당했다.

반복된 희생에 추모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한 시민들이 행동에 나섰다. 여성혐오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대구지역 시민들이 참여하는 '나쁜페미니스트 feat.대구'는 4일 밤 9시부터 1시간 30분가량 중앙로역 2번출구에서 2.28공원, 중앙파출소까지 '우리의 밤길을 되찾자 동성로 달빛걷기'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지난주부터 중앙로역에서 '여혐 반대' 발언대를 마련하고 성평등운동을 하고 있다.

메가폰을 들고 여성에 대한 '편견 철폐'를 호소하는 여성(2016.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메가폰을 들고 여성에 대한 '편견 철폐'를 호소하는 여성(2016.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들은 잇따라 발생한 여성 대상 범죄를 '여성혐오'로 규정하고 "죽음에 대한 추모를 넘어 성평등사회를 위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언론과 남성에게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 적대감, 조롱, 공격의 자세를 버리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제도 개혁에 함께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 같은 시각, 장소에서 달빛걷기 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이 운동은 서울에서도 진행된다.

행진에 참여한 김민정(30)씨는 "여성 대상 남성 범죄가 매일 벌어지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마치 여성이 잘못해 피해를 입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며 "피해자를 대상화한 OO녀를 만드는 언론과 여자탓을 하는 남성들의 인식 전환 없이 우리 사회의 여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혐오 아닌 평등을' 피켓을 들고 행진 중인 남성 참가자(2016.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혐오 아닌 평등을' 피켓을 들고 행진 중인 남성 참가자(2016.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샛별(30)씨는 "여성도 밤길을 안전히 홀로 걷고 싶다는 생각에 동참했다"면서 "치마를 입던 화장을 하던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안전하고 싶다. 그래서 강남역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남성 참가자인 김재환(23)씨는 "여성 인권을 주장한다 해서 남성 인권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성평등한 사회, 강남역 희생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가 돼야 진정으로 혐오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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