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당신이 있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촛불 하나를 들고 거리에 서서 오직 정의를 외친 17번의 밤. 늦은 가을 무렵 단풍을 배경으로, 한겨울 치떨리는 분노로, 첫눈을 맞으며 한 줄기 희망으로, 해를 넘겨 봄이 오는 길목에서 당신은 촛불을 들고 그 곳에 서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적폐를 청산하는 역사의 한 장에 대구 시민들의 얼굴이 빼곡이 기록돼 있다. 역사는 촛불을 든 당신의 편에 섰다.
<평화뉴스>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동성로 일대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진행된 17번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대구시국대회를 취재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10월말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이 '박근혜 퇴진 대구시민행동'을 꾸리고 촛불집회를 시작하면서 부터다.
당초 40여개에서 시작한 시민행동은 현재 86개로 대폭 늘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촛불과 컵을 사고 피켓과 현수막을 만들고 무대를 세워 아스팔트 거리에서 촛불집회를 이어왔다. 노동, 여성, 장애인, 환경, 인권, 청소년, 풀뿌리, 경제, 종교, 소비자, 이주, 성소수자, 평화운동, 법조인, 의료, 교원단체와 정당 등 각자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단체들이 '박근혜 퇴진' 이름 하나로 뭉쳤다. 연인원 21만여명, 모금액만 2억여원을 넘긴 대구 토요 시국대회는 대구 민중집회의 새 장을 열었다.
11월 5일 1차 시국대회. 분노는 '박근혜 하야'로 터져나왔다. 2.28운동기념공원 옆 골목길은 엔제리너스 사거리까지 빈틈 없이 촛불로 가득 들어찼다. 고교생은 시국선언을 하며 민주주의를 부르짖었고, 57년전인 1960년 4.19혁명에 참여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여든 어르신은 노구를 이끌고 무대에서 일갈했다. 자유발언대에 선 다양한 시민들의 말끝마다 수 천의 촛불이 화답했다.
2차 시국대회는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진행됐다. 시민들의 분노는 '조건 없는 즉각 퇴진'으로 모아졌다.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 국가 전반에 마수를 뻗쳤다는 증거가 하나 둘 나오며 '이게 나라냐'는 자조가 촛불을 뒤덮었다. 박 대통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 대구경북 여론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촛불 규모가 커지면서 시국대회 장소도 대로로 옮겼다. 3차부터 집회는 중앙로(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렸다. 촛불은 2만에 가까워졌다. 퇴진 대상은 박 대통령, 최순실 일가뿐 아니라 공범 새누리당, 우병우, 김기춘, 조윤선 등 부패 권력에 기생한 재벌, 언론, 검찰, 국정원 등으로 번졌다.
4차 촛불은 첫눈 속에서 타올랐다. 10살 초등학생과 수능이 끝난 고3 수험생, 언론인, 구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자유발언대에서 헌정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을 질타했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만민공동회 사회자로 나서면서 이날 전체 참가자수는 주최측 추산 5만여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한 탄핵정국에도 촛불은 켜졌다. 한 달째 거리에서 불의한 정권에 맞선 촛불의 분노는 반성 없는 집권 여당으로 향했다. 5차 시국대회 후 시민들은 새누리당 대구시당사까지 행진해 당사 현판을 '내시환관당'으로 바꿔달고 격분한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줬다.
박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열린 6차 시국대회. 무대는 국채보상로로 더 넓어졌다. 새로운 역사를 쓰던 촛불의 질주는 박근혜를 넘어 적폐청산으로 내달렸다. 세월호와 백남기 농민 사망 진상규명, 국정교과서 폐기, 사드 배치 철회, 한상균 석방 등 국내에 쌓여 있던 부정부패를 소탕하자고 목소리 높였다.
7차부터 17차까지 촛불혁명의 주된 의제는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 인용이었다. 12월 31일 송년도 새해 첫날도 춘삼월 입춘의 길목에서도 광장에서 촛불을 켠 대구 광장의 흔들림 없는 대오를 유지했다. 한겨울 추위도 짙은 어둠도 시민들의 갈망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3월 10일. 순탄치만은 않았던 넉달간의 긴 여정은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 인용이라는 절정에 달했다.
국회가 시작했고 헌재가 마무리했지만 동력은 촛불이었다. '적폐' 박 대통령은 임기를 못다 채우고 청산 당했다. 촛불을 치켜들고 목소리를 내고 결코 지치지 않았던 당신이 그 곳에 있어 이룬 값진 승리다.
그리고 당신은 다시 그 곳에 설 것이다. 켜켜이 쌓인 적폐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오는 11일 토요일 저녁 다시 동성로에서 18번째 촛불의 밤을 보낼 광장의 주인은 바로 당신의 얼굴이다.
▲ 17차 대회에서 세월호 리본을 달고 초를 치켜 든 고등학생(2017.3.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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