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 <만남>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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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훈 / 대담집 『만남』(서경식ㆍ김상봉 저 | 돌베개 펴냄 | 2007)


1. 10년 만의 조우

  한양 성벽이 남아 있는 낙산공원 아래 대학로 어느 골목, 마로니에에서 혜화동 로터리로 가는 큰 길 안 어딘가에 ‘책방 이음’이 있다. <나와 우리>라는 평화교류 사업을 하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이 서점을 찾아가면 이 단체의 대표이자 책방 지기인 조진석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대학교에서 학술운동을 하셨던 선배의 경험과 고민, 탁월함 덕분에 이 서점에는 참 소중하고 귀한 책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난 조진석 선생님과 십 수 년 차이를 두고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다녔다는 연유로, 선생님을 선배님이라 부르며 서울에 갈 때 마다 서점에 들러 책을 사는 책을 핑계로 한때 내겐 우상과도 같던 선배님과 담소를 나누곤 했다.

  2017년 11월, 이음 책방 내의 홀을 빌려 서울에서 준비 중인 <대학연구네트워크> 준비 회의가 있어 몇 달 만에 서점을 들렸을 때 이야기다. 서가에서 무척 익숙한 책 한권을 만났다. 내가 그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본 조진석 선생님은 그 책이 절판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책이 발간된 지 정확히 10년 만의 소식이었다. 그날 나는 똑같은 책을 세 번째 구입해서 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용산에서 동대구를 향해 밤을 달리는 고속철에서 순백색 바탕의 책 표지를 보며 내 책장 어딘가에 있을 새까맣게 손때가 탄 책 한권과 그 책에 얽힌 대학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아마 살면서 자기 삶이 가장 반짝이던 때가 언제였냐 묻거든 주저 없이 그 무렵이라 답할 그런 시기의 기억이었다.

2. 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

  2000년 초봄, 의사의 드라이 한 목소리를 뚫고 나온 어떤 진단은 10대의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내 친구들이 학교를 다닐 때 난 학교가 아니라 집 혹은 드문드문 지금은 사라진 시내의 제일서적이나 제일문고에서 박노자나 홍세화를 만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돌고돌아 들어간 대학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정작 내가 그토록 소원하던 대학은 없었다. 사실 그 기대, 그 관념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내 또래들과 그들의 문화, 정서들이 대학에 간다고 전혀 다른 사람, 다른 문화, 정서가 될 거라는 사고 구조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이 어린 오만함으로부터 빚어진 실망 덕분에 강의는 별로 재미도 없고 사람들은 시시했다. 술게임이나 하는 동기들은 참 보잘 것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실망과 그나마 그 속에서 만난 좋은 이들 사이에서 한 해를 마칠 무렵에 그 선배를 만났다.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난 이상하고 재미 없는 인간으로 견적이 나버렸다. 다소 권위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대학 문화에 적응하는데도 제법 애를 먹었고, 오만과 실망과 기대가 뒤섞인 내 맘 속의 벽은 동기들과 썩 좋은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10대때 잘못 만난 홍세화니 정운영이니 박노자 덕분에 사회문제나 정치에 대해서 말하기 좋아했기에 그나마 대학에서 인간관계는 그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 사이에서만 좁게 구축되었다. 그러던 중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끝낼 무렵 한 선배에게 단과대 학생회 선거에 선거운동원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난 과대도 아니었고 학과 집행부도 아니었지만 세상에 대해 고민과 관심이 있을테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이야기 하셨고, 난 어쩌면 내 20대 전체의 변곡점이 될 선택을 그날 했다.
 
 
 
그날 나는 20대 내내,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큰 빚을 진 선배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렇게 학생회 선거를 치르고 학생회 언저리에 있다가 2학년 한해가 끝났다. 그 가운데 그해 단대 회장이었던 철학과 선배 B를 참 열심히 따라다녔다. 형의 웃음도 고민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좋았다. 그의 인격 그의 태도 하나하나를 배우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B형은 어떤 의미에서 내가 처음으로 존경한 타인이었다.

  그렇게 한해가 흐르고 B형은 함께 학생회를 하던 M누나 등과 함께 졸업을 했고, 졸업을 하기전 형은 내게 한권의 책을 유산으로 선물해줬다.

  그 책은 재일 조선인 문필가와 ‘거리의 철학자’와 학벌주의 반대 운동으로 유명한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선생님의 대담집이었다. 하얀색 바탕에 두 사람이 찻잔을 마주하는 모습이 담긴 표지 뒤에는 B형이 ‘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 2008. 2. 11.’라는 한 마디가 적혀있었다.

  그 책을 참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마치 기독교 교인들이 성경을 들고 다니듯 늘 들고 다니며 책을 짬짬이 읽었었다. 그렇게 나는 서경식을 만났다. 비록 여전히 인간에 대한 심원한 이해 같은게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3. 서경식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길잡이, <만남>

  문필가 서경식은 몇 가지 오해와 특이한 유통구조 위에 서있다. 특히 그가 이해되고 유통되는 데에는 서로 절충되기 힘든 두 가지 흐름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서경식이 가진 저항적 성격, 불온한 경계인의 시선에 주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힐링 내지 한국적 맥락에서 ‘인문’, ‘예술’, ‘교양’에 대한 동경과 냉소, 비아냥, 무시가 뒤 섞인 시선 속에서 소비되는 것이다.

서경식의 운동성, 저항적 성격에 주목하는 시선에서 서경식은 일본의 우경화, 천황제, 제국주의, 배외주의와 맞서는 투사와 같은 문필가이다. <난민과 국민사이(돌베개, 2006)>로 대표되는 그의 평론집들은 서경식이란 인물을 구성하는 몇 가닥의 맥락들 속에서 그 어떤 시각보다도 날카롭고 예리하게 일본 사회와 홀로코스트, 한국 사회, 문학과 예술들을 꿰뚫고 있다. 서경식이란 인물은 온전한 조선인도 온전한 일본인도 되지 못한 채 경계에 서서 수난 받는 재일조선인으로 그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으로 살아왔다. 이 위치에서 겪은 배제와 수난, 멸시의 경험들은 그에게 탈식민주의적이고 해방적인 공동체의 재구축, 인간에 대한 이해, 타자의 고통에 대한 참여와 연대, 제국주의에 대한 사죄와 책임 문제 등에 대한 고뇌와 성찰이 서경식이란 문필가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그는 이런 맥락 속에서 1990년대 초반 ‘사죄의 시대’ 이후 도래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와 맞서왔고, 책임주체논쟁으로 불리는 사죄와 책임의 주체를 둘러싼 일본 지식 사회의 논쟁에서도 세카이(世界)와 같은 잡지들의 지면을 통해 개입해왔다. 이 속에서 현실을 하나의 불가항력적인 제약요소로 이해하는 일본 리버럴들의 태도를 비판해왔고, 이는 수해 전 한국에서 벌어진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뿌리와 이파리, 2013)> 논쟁에도 정영환, 김부자 등 다른 비판적 재일 조선인 지식인들과 함께 개입해왔다.
 
2014년 대구 강연 / 사진. 김도균
2014년 대구 강연 / 사진. 김도균
 
 
 
  이런 운동성, 저항성과 동시에 서경식을 이해하는 다른 하나의 단초는 교양, 문화, 예술에 대한 강조이다. 특히 이 부분이 서경식에 대한 대중적 오해를 빚고 있다. 서경식의 대표적인 저작인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는 얼핏 보면 1980년대 유럽에서 미술관 기행을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형편이 ‘좋은’ 재일동포가 쓴 ‘교양 넘치는’ 책처럼 보인다. 이런 설명의 저변에는 한국 사회에서 교양이니 문화니 예술 따위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고 실용성도 없는 돈 많고 시간 많은 이들의 우아한 사치 생활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 현실이 있다. 특히 서양미술, 클래식 등이 가진 다소간의 진입 장벽(그것은 이런 사회적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다)은 교양, 문화, 예술에 대한 이런 동경과 비아냥, 무시, 냉소가 뒤섞인 태도를 강화시켰다. 그렇기에 미술, 음악 따위를 강조하고 이를 보기 위해 서구 세계를 탐방하는 서경식의 이미지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여유 있는 ‘교양인’ 정도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서경식에게 이런 문화, 예술, 교양에 대한 천착은 단순한 힐링이나 우아한 부유층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탄압받은 선생의 두 형 서승과 서준식 선생의 20년에 가까운 감옥살이와 그 과정에서 선생 본인이 느낀 감정들 그리고 20년에 걸친 형제의 옥살이 가운데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감정에서 오는 억울함과 분노로부터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시작되었단 사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서경식의 근작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반비, 2018)>에서 서경식이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을 이해하고 대하는 태도, 그 외에 함께 주요하게 언급 되는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의 작품 등은 서경식에게 예술이 인간과 세계를 정확히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특히 이전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나 <고뇌의 원근법(돌베개, 2009)>에서 다뤄진 오토 딕스나 프란시스 베이컨, 펠릭스 누스바움 역시 흔히 말하는 교양있는 중산층의 호화로운 취미생활이 지향하는 그 부르주아적 미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그것은 서경식이 <만남>에서 한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추한 것, 어리석은 것 모두를 포함해서 우리가 외면하는 것, 볼 힘이 없는 것들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서경식은 “우리가 닫혀 있는 이 세계의 외부, 혹은 바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369p)”것으로 “타자성에 대한 상상력”을 끌어내는 중요한 매개이다. 서경식은 이런 문화, 예술에 대한 강조를 단순히 소비적인 미학에 대한 강조를 넘어 타자의 존재를 상상하고 그들의 고통에 응답하며 참여하여 연대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논한다. 결국 이런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강조가 쓸모 없는 것들에 대한 멸시와 조롱, 일정한 부를 가진 이들이 배타적으로 향유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냉소라는 인식의 틀에 갇혀서는 안되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어두운 지하실만이 닫힌 세계가 아닙니다. 네온사인의 요란한 유혹이 있고,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널려 있는 가운데서 당뇨병으로 죽어가야 하는 이런 세계도 하나의 갇힌 세계인 거지요. 다소 비약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도 그런 닫힌 세계, ‘이런 것이 성공적인 삶이다’라는 일원적인 가치관을 주입시키고 그 외부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걸 넘어서서 굉장히 다양한 세계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 저는 그것이 교양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만남, 369-371p)

  그런 의미에서 거리의 철학자 김상봉과 서경식이 나눈 대담집 <만남>은 성공회대 강의를 바탕으로 출간 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철수와 영희, 2009)>와 더불어 인문주의자 서경식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의 역할에 어울리는 책이다. 공통적으로 두 책 모두 서경식의 글이 아닌 말에 기반을 두고 있고, 각기 강의와 대담이란 형식을 통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서경식의 사상적 지평과 삶의 여정을 짚어가기에 좋은 책들이다. 특히 <만남>은 서경식의 개인적인 배경과 고민의 맥락만 아니라 5.18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각자의 소개와 고백, 과거사 문제에 대한 고민들, 한국 사회에 대한 시선, 교양과 문화예술에 대한 논의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기에 서경식의 미술, 음악 순례 시리즈나 세 권의 평론집(난민과 국민사이, 언어의 감옥에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등 대부분의 저술들과 자연스럽게 이어 읽을 수 있다.

2-1.

  <만남>을 선물 받은 지 10년이 지났다. B형이 바랬던 것에 비해 불행히 여전히 인간에 대한 이해는 얄팍하기 그지없고, B형과의 만남으로 인해 훌륭한 진보정당 당직자가 되고 싶다 하던 학부생은 박사과정을 다니는 온전히 활동가도 연구자도 글쟁이도 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한량 아저씨가 되었다. 그 사이 책은 절판되었고, 책장에는 똑같은 책 세권이 나란히 꽂혀 있다.

  사실 B형은 나에게 <만남>을 선물함으로써 20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삶의 방향을 바꿨다. 어느순간부터 난 대구에서 서경식의 텍스트를 읽는 모임을 꾸리고 이들과 대중적인 학술, 교양 운동을 고민하게 되었고, 맑스나 그람시를 읽고자 아등바등 하던 노력은 에드워드 사이드나 데리다를 읽어보겠다는 노력으로 변했다.(물론 불행히 참 안읽힌다.) 그 책으로 시작한 서경식과의 조우는 어느새 서경식의 텍스트를 읽는 모임의 이름으로 선생을 대구로 초대하여 말씀을 듣는 짧은 자리를 여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을 만난다는 건 개인의 삶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 되곤 한다. <만남>은 그 책 자체로는 위대한 책은 아닐지 몰라도 그런 사건, 그 이전의 내가 겪고 고민하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문을 열어 젖히기엔 충분한 책이었다. 내가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그 구성이 변했고, 내가 쓰고 읽는 책과 글의 변화, 왜 갑자기 미술관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지 그 모든 변화의 시발점에는 <만남>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만남>을 만난 것은 생에 걸친 선물일지도 모른다.

  이 답답한 지하감옥과 같은 대구 사회에서 창문을 내고자 하는 모두에게 <만남>을 만날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만남>을, 서경식을 혹은 다른 누군가를 만난 이들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혹은 서로에게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선물이 되어주길 그리고 그런 시도가 환대 받을 수 있길 상상해본다.
 
 
 





[책 속의 길] 127
이시훈 / 대학원생. 정치외교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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