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월급에서 빼가는 '숙식비', 직장 못 옮기게 가로막는 '고용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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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에는 '숙박시설 제공'...현실은 노동자 동의 없이 '숙박비 공제'
대구경북 노동단체 "숙식비 공제지침, 고용허가제 폐지" 촉구


조세야(가명.20대)씨는 2015년 미얀마에서 경북의 A제조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었다. 그는 숙소와 밥을 공짜로 주겠다는 계약서를 믿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2017년부터 A업체는 조세야씨의 월급에서 '관리비'와 '도시가스비' 등을 이유로 매월 20~30만원대의 돈을 빼가기 시작했다.

A업체는 고용노동부가 2017년 2월부터 시작한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숙식비징수지침)'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사장이 이주노동자에게 숙소나 밥을 주게 되면 이주노동자의 통상임금에서 최대 20%까지 가져갈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조세야씨는 이에 동의를 한 적이 없다. A업체는 근로기준법 제43조가 정한 '임금 전액 지급의 원칙'을 위배하고 임금체불을 한 셈이다.

'조세야씨가 2015년 미얀마에서 맺은 표준근로계약서...숙박시설과 중식 '제공'으로 돼있다.(사진 위) 그러나 계약과 달리 매월 '관리비'와 '도시가스' 명목으로 급여에서 공제하고 있다.(사진 아래) / 사진 제공. 성서공단 노동상담소
'조세야씨가 2015년 미얀마에서 맺은 표준근로계약서...숙박시설과 중식 '제공'으로 돼있다.(사진 위) 그러나 계약과 달리 매월 '관리비'와 '도시가스' 명목으로 급여에서 공제하고 있다.(사진 아래) / 사진 제공. 성서공단 노동상담소
계약과 달리 매월 '관리비'와 '도시가스' 명목으로 급여에서 공제됐다. / 사진 제공. 성서공단 노동상담소
계약과 달리 매월 '관리비'와 '도시가스' 명목으로 급여에서 공제됐다. / 사진 제공. 성서공단 노동상담소

A업체는 2017년 2월부터 조세야씨에게 부당하게 가져간 임금을 돌려줘야 하지만 조세야씨는 함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고용허가제 때문이라는 게 그와 상담한 상담사 설명이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때문에 조세야는 지금도 A업체에서 일한다.

대구경북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연대회의,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민주노총경북지역본부는 지난 16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숙식비징수지침 폐지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사업장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인데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사업장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다"며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숙식비징수지침은 임금을 모두 지급해야한다는 근로기준법의 원칙을 어기고 임금 차별을 당연하게 만들었다"며 "숙식비징수지침을 폐기하라"고 했다. 또 "이주노동자들은 공항에서 퇴직금을 주는 제도인 출국만기보험 때문에 제대로 퇴직금을 못 받고 있다"며 "퇴직금을 국내에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고용허가제 강제노동 15년, 노동허가제 쟁취 최저임금 개악 반대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기자회견'(2019.8.16. 대구지방고용노동청) / 사진. 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고용허가제 강제노동 15년, 노동허가제 쟁취 최저임금 개악 반대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기자회견'(2019.8.16. 대구지방고용노동청) / 사진. 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대구고용노동청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등록 이주노동자는 8월 15일 기준 6.383명에 이르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

이 자리에서 15년 전 스리랑카에서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온 차민다(41) 성서공단노조 부위원장은 "최저임금은 쥐꼬리만큼 올랐지만 숙식비징수지침 때문에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라며 "이런 문제 때문에 회사를 나오면 미등록이 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만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임성열(50) 민주노총대구본부 수석부본부장은 "대한민국 헌법에는 어떤 이유의 차별도 없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지금 숙식비징수지침이나 고용허가제를 보면 차별이 제도화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숙식비징수지침은 애초에 숙식비를 이유로 과도하게 월급을 빼앗는 행위를 막기 위해 생긴 가이드라인"이라며 "지침이 없어져도 사업장이 이주노동자에게 숙소와 밥을 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폐지, 사업장 이동자유 보장"(2019.8.16. 대구지방고용노동청) / 사진. 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고용허가제 폐지, 사업장 이동자유 보장"(2019.8.16. 대구지방고용노동청) / 사진. 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그러나 김용철(58) 성서공단노동조합 상담소장은 "공제지침이 생기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업장들은 공짜로 기숙사와 식사를 제공했다"며 "일부 사업장이 과도하게 빼앗는 것을 막기 위해 생긴 제도가 도리어 다른 사업장이 월급을 빼앗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고용허가제'에 대해서도 "이주노동자는 폐지하라고 하고, 사업자는 아예 사업장을 옮길 수 없게 해달라고 하는 등 의견이 크게 갈려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출국만기보험에 대해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발생을 막기 위해 출국을 전제로 공항에서 퇴직금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퇴직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문제는 제도적으로 검토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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