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에 문 연 대구 첫 '철거민 쉼터'...지자체 방관 속 이마저 사라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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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구청 '긴급복지제도'에 책임 떠넘기다가...철거민들이 직접 대명동에 '사랑의 보금자리' 열어

 
재건축·재개발에 집 잃은 철거민들이 지자체 방관 속에 직접 대구지역 첫 '철거민 쉼터' 문을 열었다. 

지난 9일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한 3층짜리 건물에 현수막이 붙었다. '사랑의 보금자리'라는 이름의 철거민 쉼터다. 방 3칸, 거실, 욕실, 주방이 있는 30평 공간을 층마다 공동으로 나눠서 쓴다. 
 
(왼쪽부터)박명원 위원장, 김도은씨, A씨가 철거민 쉼터 '보금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0.1.9)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왼쪽부터)박명원 위원장, 김도은씨, A씨가 철거민 쉼터 '보금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0.1.9)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다섯 식구의 가장인 A(54)씨는 두류동 재개발 사업으로 12월 집을 잃은 뒤 친척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다가 최근 쉼터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가족들과는 여전히 뿔뿔이 흩어져 홀로 살고 있다. 하지만 쉼터가 생겨서 이전보다 상황이 좀 나아졌다. 갈 곳 없이 불안해하거나 눈치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A씨는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지만 지금은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곳이 생겨 다행"이라며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쉼터에서 짧게라도 추위를 피해 편히 지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쉼터로 건물을 내준 이는 해당 건물 소유주인 김도은(57)씨다. 그는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 함께 지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면서 "최소한 집을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온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대구에 철거민 쉼터가 생긴 건 처음이다. 최근 지역 곳곳에 도시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철거민이 늘어난 탓이다. 철거민들은 대구시와 각 구·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원 근거가 없다"며 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다.
 
대구지역 첫 철거민 쉼터 '사랑의 보금자리' (2020.1.9)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대구지역 첫 철거민 쉼터 '사랑의 보금자리' (2020.1.9)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때문에 철거민들은 직접 '대한민국철거피해연대 창립준비위원회(위원장 박명원)'를 만들었다. 대철연은 오는 3월 정식 창립해 철거민 인권보호 사업을 한다. 그 이전에 가장 시급한 쉼터 문부터 열었다. 철거민이면 누구나 입주 가능하며 사용 기간은 집을 구할 때까지다. 본인 부담 비용은 없다. 수도세, 전기세 등 1인당 월 30여만원의 비용은 대철연이 대신 낸다. 현재 쉼터에는 철거민 3명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쉼터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쉼터가 있는 동네도 뉴타운(대명3동뉴타운주택재개발정비사업)에 묶인 탓이다. 현재 부동산명도소송이 진행 중이며 90%가 이주했다. 본격 철거가 시작되면 동네에는 34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15개동이 들어선다. 대철연은 철거에 대비해 쉼터 이전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건물을 선뜻 내줄 사람도 드물고 지자체 지원 가능성도 낮아 고민이 크다.  

'신암4동 뉴타운 주택재건축정비사업'으로 지난 11월 자진 퇴거하라는 계고장을 받은 박명원 대철연 위원장은 "철거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시청, 구청, 주민센터를 찾아도 '도울 방법이 없다'는 말만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때문에 "너무 답답해서 우리끼리 힘을 합쳐 살아보려고 쉼터를 만들었는데, 이곳도 사라질까봐 걱정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자체가 방법을 만들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사랑의 보금자리에 입주한 철거민들이 함께 쓰는 부엌 (2020.1.9)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사랑의 보금자리에 입주한 철거민들이 함께 쓰는 부엌 (2020.1.9)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이처럼 철거민들이 자구책을 마련하는 사이에도 지자체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대구시 주택정비팀 한 관계자는 "각 구·군청에 재개발·재건축으로 집 잃은 철거민들이 '긴급복지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며 "제도 안내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홍보에 더 힘쓰겠다"고 말했다. 다만 직접적인 지원 방안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 대구시가 나서긴 어렵다"고 답했다.

반면 구청은 해당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달서구 철거민 A씨는 "철거당한 다음 날 달서구청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지만 구청 공무원은 '도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며 "하는 수 없이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달서구청 해당 공무원은 "제도를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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