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정치하시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은정 칼럼] "평범한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정치, 제발 잘하시라"


총선이 끝났다.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철저한 방역 조치 하에 혼란 없이 질서 있게 치러졌다. 투표율은 66.2%였다. 28년 만에 최고 높은 투표율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대다수 국가가 주요 정치 일정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한국의 선거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모습을 보고 나라 밖 언론과 정치인들은 많은 관심과 찬사를 보내왔다.

SNS에서는 그레이엄 넬슨 주한영국대사관 참사관의 트위터 글과 댓글들이 많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후보자, 유권자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누가 승리했는가보다 이런 위기 중에서도 안전하고 질서 있게, 높은 투표율로 주권 행사를 하시는 대한민국이 제일 큰 승리자이지요”라는 찬사를 올렸다. 이에 한 네티즌이 “다음 총선에 나오실래요? 북한 외교관도 되는데 영국 외교관은 그냥 거의 90%로 됩니다”라는 댓글을 올렸고, 다시 그가 ‘ㅋㅋㅋ’라고 답했다. 이 글들은 수차례 리트윗되며 네티즌들을 웃게 하였다.

선거가 무사히 치러진 그것뿐 아니라 현 정부와 여당은 전폭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개헌 말고는 다 할 수 있다는 180석을 차지했다. 열린민주당과 무소속 등 친정부 진영의 의석도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 양당 구조를 넘어 다양한 세력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은 무너졌고, 우리가 사는 이곳 대구·경북에서는 보수수구 세력이 의석을 싹쓸이를 해버렸지만, 그래도 많은 국민은 더는 퇴행적인 막말과 적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거에서 분명히 보여줬다. 또 국민은 코로나19 위기극복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삶을 돌보는 것임을 투표로 말했다. 국민은 현명했고, 국민은 절박하다.

<경향신문> 2020년 4월 17일자 1면
<경향신문> 2020년 4월 17일자 1면

통계청의 ‘3월 고용 동향’을 보면 취업자 수가 10년 2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서 20여 만 명이나 줄었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최대이다. 무급 휴직 등 일시휴직자는 160여 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배 가까이 급증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은 약 9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신규 신청자만 15만6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숫자는 제도권 내에 속한 근로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고용보험 미가입된 영세사업장이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실태는 확인할 수조차 없다.

이런 수치조차도 한가한 소리일지 모른다. 코로나 여파로 생계를 고민하던 50대 가장이 삶을 버렸다. 여행사를 운영했던 성실했던 자영업자였다고 한다. 며칠 전엔 생계가 막막해진 일가족 3명이 삶을 비관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처참한 비극이 이제 시작이 아닐까 해서 두렵다.

러시아계 한국인 연구노동자 박노자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진실의 순간'이라는 표현을 빌려 코로나 19 이후 닥칠 상황을 예견했다. “‘진실의 순간’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심각한 위기가 닥치게 되면, 평상시에 각종의 정치적 수사나 프로파간다 등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바로 보게 됩니다. 예컨대 한국으로서는 IMF 사태가 이런 '진실의 순간'이었지요. ...... '진실의 순간'에는 평상시에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는 나라 사이의, 아니면 사회적 계층 사이의 '서열'은 재차 재확인됩니다.”라고 말했다.

IMF 사태가 드러낸 ‘진실의 순간’은 노동자들에게 트라우마다. 최초의 문민정부가 내세운 개혁과 경제성장, 선진국 진입이라는 화려한 말들은 노동자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세계 최대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견디며 이룬 발전된 나라는 노동자들에게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재벌과 대기업은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거대해졌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가 제도화되고, 일상화되는 출발점이었다.

IMF 트라우마는 지난 3월 20일 경총이 “경제활력 재고와 고용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라는 이름으로 40개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되살아났다. 3월 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선언’을 통해 고용유지를 합의해놓고 뒤돌아서 곧바로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와 ‘쉬운 해고제 도입, 노동기본권 제한’ 등을 국회에 요구한 것이다.
거대한 위기를 노동자들과 취약계층에 떠넘기고 자신들의 주머니만 지키겠다는 재벌과 기업의 태도는 20년이 더 지났지만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모두가 어려울 때 취약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경영계가 더 부담하고 솔선하겠다는 말은 언감생심,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책에도 ‘고용유지’ 약속은 언급조차 없다. 재벌과 기업의 파수꾼 노릇을 자청했던 정치는 이제 바뀔까?

총선이 끝났다. 이전과는 다른 정치가 시작되어야 한다. 새롭게 시작되는 정치는 바이러스와의 싸움도 경제위기 극복도 사람을 살리고, 평범한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것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 살려야 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사람이다. 최소한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없어 끈을 놓아버리는 사람은 없도록 긴급생계지원금을 한시라도 빨리 국민의 손에 전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국민의 일자리와 소득을 지켜내고 소박한 일상을 유지하는데 국가 재정을 가장 먼저 배정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이 위기 속에서도 누군가는 더 행복하고 더 평화롭고 더 평등한 세상을 그려볼 수 있는 미래를 선사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제발 잘하시라, 기대하고 있으니 지켜보고 있으니.







[정은정 칼럼 7]
정은정 / 대구노동세상 대표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