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참 바보다 -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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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익 /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
- 감염병과 혐오의 시대, 의사 김동은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김동은 지음 | 한티재 | 2020)

 
'착하게 살자'라는 말, 막상 끄집어내기도 머쓱하고, 가만 듣고 있자면 딱하기조차 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이 고리타분한 말이 문득 살갑게 들려올 때 새삼 울컥해진다.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김동은)가 그렇다!

세상에 온갖 현란한 백 가지 신들 중에서 으뜸은 내 곁에 있는 바로 ‘당신’이란다. ‘사람 향기 가득한 세상. 김동은 드립니다.’라고 속표지에 가지런히 적힌 글귀를 보고는, 지은이의 전매특허인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울컥한’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의사가 되어라"

  ‘인간다운 따뜻한 맛’인 인간미(人間味)야말로 의사가 꼭 갖춰야 할 심성임을 병원 생활을 하면서 자주 느낀다. 의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에 대한 수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지금 초심을 잃지 않고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늘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의사」에서)

 뒤늦은 나이에 의과대학을 마친 후, 의사시험 합격증을 받고서 찾아뵌 고3  담임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딱 한 가지 당부 말씀이란다. 세상에 돈 되는 의사보다 도움 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 착하게 열린 귀에는 쏙 들어오고 짙게 남기 마련이다.

......"인간미가 넘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순간 책상 위에 채점 용지만 보고 있던 세 분의 면접관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난다. ...... 천박한 의료기술자가 아니라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의사가 되어야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부끄러웠다. 나는 과연 그런 의사로 살고 있는가.’ (「책을 펴내며」에서)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김동은 지음 | 한티재 펴냄 | 2020)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김동은 지음 | 한티재 펴냄 | 2020)

 오래전 대학시험 면접장에서의 광경이었다. 교수가 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되물어보고 자꾸만 부끄럽단다. 저 혼자 돈독이 오른 장사꾼 의료기술자가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돈독하게 살아가는 살맛나는 의사이고 싶은 꿈을 아직도 꾸면서 말이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구호는 한 시절 섬뜩한 정보요원들의 부르짖음만은 아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눈코 뜰 새 없는 와중에도, 그의 눈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찾아다니노라 바쁘다.

......"내일부터 격리병동에 들어가서 간호사 일을 돕겠습니다"
 
 병원장과 수간호사를 찾아가 말했다. 고맙다고 하면서도 의아해하는 눈빛과 우려의 눈빛이 섞여 있었다. ...... 오전 7시 30분, 업무를 시작하는데 수간호사가 가까이 오더니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했다. “교수님, 정신없이 바쁠 땐 제가 교수님이라고 배려해 드리지 못해요.” ...... 격리병동에서 주어진 나의 첫 업무는 배식이었다. ...... 내가 배식하는 동안 간호사들이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좋았다. ...... 우리는 간호사들의 중노동을 잘 알지 못한다.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반성을 많이 했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너무 힘들어서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간호사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방역과 보건의료체계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 외래 진료와 수술이 없는 화요일,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격리병동에서 간호사들을 도운 지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 지친 몸을 이끌고 함께 일했던 네 명의 간호사와 함께 병동을 빠져나오는데 간호사 한 명이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함께 있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그 마음 저희가 알아요.” ‘ (「코로나19 최일선의 간호사」에서)
 
 그 마음을 채 헤아리지 못한 나도 울컥했다.
 
 김나경 감독의 단편영화 <내 차례>는 간호사의 ’임신 순번제‘를 다루었다. ...... 임신 순번제 역시 병원의 인력 부족에 따른 간호사들의 궁여지책이다. ...... 자신의 차례가 아닌데 임신한 주인공이 수간호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한 명 빠지면 모두 힘들다’라며 슬그머니 산부인과 명함을 내민다. ”빨리 정리해. 바퀴가 망가지면 자전거가 제대로 못 굴러가는 거야.“ 선배 간호사의 말에 후배 간호사는 흐느끼며 말한다. 바퀴가 아니라 자전거 전체가 고장난거 아닐까요?”......“(「간호사가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하다」에서)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파야 하고, 간호사가 행복해야 환자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되뇌는 앵무새의 입과 되새기는 사람들의 가슴까지가 참 멀기도 하다.

 선별진료소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오염되었을지 모른다며 허술한 방호 장비를 한 채 독한 소독약으로 닦고 또 닦던 노동자들, 병동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하 2층 전기실에서 주야로 애써주던 노동자들, 방호복을 입고 무거운 약통을 짊어진 채 병원 안팎을 소독하던 방역업체 노동자들,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분들을 병원에서 가끔 마주쳤다. 그러나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의사, 간호사들의 감염 우려에 대해서는 크게 외치면서 그들의 부실한 보호 장비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그림자 노동’ 덕분에」에서) 
 

 뒤틀리고 어두운 세상에 대해 목청껏 비분강개하는 투사이기 전에 끊임없이 부끄러워하며 걱정하고 애끓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바보다.

 ‘씹던 껌을 아무데나 퉤 뱉지 못하고/ 종이에 싸서 쓰레기통으로 달려가는/  너는 참 바보다./ 개구멍으로 쏙/ 빠져 나가면 금방일 것을/ 비잉 돌아 교문으로 다니는/ 너는 참 바보다./ 얼굴에 검댕이 칠을 한 연탄장수 아저씨한테/ 쓸데없이/ 꾸벅, 인사하는/ 너는 참 바보다./ 호랑이 선생님이 전근 가신다고/ 계집애들도 흘리지 않는 눈물을 찔금거리는/ 너는 참/ 바보다./ 그까짓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민들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바라보는/ 너는 참 바보다./ 내가 아무리 거짓으로/ 허풍을 떨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를 끄덕여 주는/ 너는 참 바보다./ 바보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고/ 씨익 웃어버리고 마는/ 너는/ 정말 정말 바보다.// ―그럼, 난 뭐냐?/ 그런 네가 좋아서 그림자처럼/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나는? (신형건의 「넌 바보다」 전문)

 세상에 응달진 곳이면 함께 눈시울 붉히며 울컥거리는 참 착한 바보에게 머리 숙여 올립니다. 존경하며, 자꾸만 부끄러워하며.
 
 
 
 
 
 
 
 
 
[책 속의 길] 169
송광익 / 의사. 성주효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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