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트랜스젠더(Transgender.성(性)전환 수술로 반대의 성이 되길 원하거나, 인식을 통해 반대의 성이라고 지향하는 이들)'라는 이유로 버림받은 많은 당신을 기억한다"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어머니 라라(활동명)씨는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인 31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당신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며 "당신은 이 땅에서 함께 살기 충분히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다. 당신은 우리 옆의 트랜스젠더"라고 말했다.
무지개인권연대와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의당 대구시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이날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트랜스젠더는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며 "거주공간이 있고 즐겨찾는 장소가 있고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일상을 보낸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며 특정 장소와 지역에서 격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고용에서의 차별과 불이익으로 기본권과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불안정한 노동과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로 인해 트랜스젠더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안일한 인식에 우리는 분노하고 저항한다"며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그들의 아픔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들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고 촉구했다. 또 "정부는 트랜스젠더와 성소수자를 위한 사회 보호 장치 차원에서 즉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은 2009년 미국 트랜스젠더 활동가인 '레이첼 크랜들'이 제안한 날이다. 매년 3월 31일 트랜스젠더 존재를 드러내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것이 목적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이날 비슷한 취지의 행사들을 연다. 한국에서는 대구와 서울 등에서 열렸다.
대구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회견 후 서로를 향한 지지와 연대를 표현하며 우산을 펼쳐들고 동성로 광장을 채우는 퍼포먼스를 했다. 색색의 우산 끄트머리에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라고 적혔다.
또 다른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오은지씨는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슬픔과 절망이 커져 끝내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슬픔을 토로했다. 때문에 "제 아이가 가족 안에서 함께 밥을 먹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듯이 지금 당신의 곁에도 트랜스젠더인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면서 "이들이 자신을 숨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가족과 동료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는 "트랜스젠더 혐오와 차별은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보장하는 우리 헌법에 위배되는 기본권 침해"라며 "소수자 가시화 목적은 '존재' 전시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변할 지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에 거주 중인 만19세 이상 트랜스젠더 591명을 대상으로 혐오와 차별에 대한 경험을 설문조사해 지난 2월 9일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생활·일상, 학교·교육, 고용·직장, 화장실·시설이용, 의료접근성 등 사회 전 분야에서 트랜스젠더들은 혐오와 차별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가운데 구직 활동 경험이 있는 469명 중 268명(57.1%)은 성별 정체성과 관련하여 "구직 포기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구직·채용 과정에서 "외모 등이 남자/여자답지 못하다"는 반응(48.2%)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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