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둘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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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칼럼]


 꼭 예순 둘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위인들의 수명과 비교해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쉰이 될 때는 사십대 후반에 사망한 시인 김수영이나 카뮈보다 오래 사는구나 하는 감회가 있었고, 환갑을 넘길 때는 베토벤이나 도스토옙스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상에서 보냈다는 감회가 있었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인류에 기여한 위인들은 대체로 지금의 나만큼도 살지 못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 62세가 되기 한 달쯤 전에 비명(非命)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나의 나이가 박 전 대통령이 마지막 시간들을 보냈던 시절의 나이와 같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영원히 이 나라를 옥죄며 지배할 것 같던 완고한 독재자의 모습에 나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투영시키기는 힘들다.

 좀 더 젊었던 시절에는 비슷한 연배임에도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 부러운 마음이 들고는 했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창작되었는지를 유심히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부러움이나 질투심 같은 것도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우리 세대가 이룬 일들은 다 나의 성취인 듯 뿌듯하기도 하고, 더 어린 사람이 쓴 좋은 작품을 만나면 마치 내 것으로 되는 것처럼 흐뭇하기도 하다.

 오래 살아보면 사람이 사는 것이 다 비슷하게 보인다. 사람이 자기 의지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정해진 환경에 적응하고 따라서 흘러가는 것이 훨씬 많다. ‘살아간다’라기 보다는 ‘살아진다’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나 달이 지구를 도는 것이나 다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그 순환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 꽃이 피고 지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가깝고 먼 수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착각에 불과할 것이다.

 공자는 예순이 되어서 귀가 순해졌다고 하였다(六十而耳順). 귀가 순해진다는 말을 세상의 사리에 통달하게 되어 모든 말을 다 이해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져 거슬리는 말을 들어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삼이사가 어찌 성인의 흉내를 낼 수 있으리오. 사람은 늙어가면서 더 편협하고 메마른 성정(性情)을 가지기가 쉽다.

<한겨레> 2014년 1월 4일자 20면(기획)
<한겨레> 2014년 1월 4일자 20면(기획)

얼마 전에 작고하신 채현국 선생께서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고 질타하면서 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하셨다. 노인이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예외적이며 끊임없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70대 초반에 죽은 공자는 만년의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하여 제자인 자로에게  ‘몰두하여 먹는 것을 잊고(發憤忘食), 즐길 때는 근심을 잊고(樂以忘憂), 장차 늙어가는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말해 달라고 하였다. 나이가 들면 논어(論語)가 좋아진다고 말들을 하지만 공자의 저 바람은 이 시대 장래의 노년들에게도 참으로 절실하게 들린다.

 태어난 지 예순 두 해가 된 날이라고 또 한 그릇의 미역국을 먹고 SNS로 축하들을 받고 늘 그랬듯이 또 일터로 나선다. 오늘은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는 살아온 날들을 무기로 삼아 살아갈 날들에 맞선다. 저울이 한 쪽으로 기운 지는 오래지만 남은 시간들이 늙어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재동 칼럼 17]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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