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트럭 몰고 한 달간 전국 '물류센터' 순회 "산재 사망 판정에도 사과·대책 없다" 규탄 야간노동 최소화·휴식시간 보장·냉난방시설 촉구...과로사위 "1년 간 9명 숨져, 특별근로감독"
"덕준이가 세상을 떠난지 7개월째. 산재 사망 판정에도 쿠팡은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쿠팡 경북 칠곡물류센터에서 1년 넘게 일용직 야간 분류 노동자로 일하다가 숨진 20대 청년노동자 고(故) 장덕준씨.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 장광씨는 이처럼 말하며 울분을 토했다.
아들이 떠난지 7개월째. 부모님들이 전국을 돌며 과로사 대책을 호소한다. 아버지 장광씨와 어머니 박미숙씨는 13일 대구노동청 앞에서 전국순회투쟁을 알렸다. 유족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 대구경북지역본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와 대책"을 요구했다.
부모님들은 '쿠팡이 내 아들을 죽였다. 살인기업 쿠팡을 처벌하라'라고 적힌 트럭을 몰고 한 달간 전국을 돌며 과로사 실상을 알린다. 발족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는 18일 부산·경남, 25일 광주·전남, 27일 전주·전북, 오는 6월 1일 충남, 2일 충북, 9일 경기, 15일 인천을 거쳐 내달 17일 서울 쿠팡 본사 앞에서 순회를 마친다. 쿠팡 지역물류센터 등 노동계를 만나고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쿠팡은 여전히 유족을 만나 직접 사과하지 않고 있다. 유족이 과로사위와 함께 만날 것을 요구하자 선을 그었다. 대책안도 마찬가지다. 쿠팡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대책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유족과 과로사위가 요구하는 수준에 접근하지 못하 있다. 유족이 직접 호소에 나선 배경이다.
유족과 과로사위는 ▲노동조건(임금, 노동강도) 현실화, 정규직 비율 점진적 확대 계획 수립 ▲심야 야간노동 금지 기준 마련, 주야 2교대·3교대 근무로 전환 ▲냉난방시설 의무화 ▲야간근무자 특수건강검진 실시·일정기간 이상 연속 근무한 일용직에 대한 연차유급휴가 제공 등을 쿠팡에 촉구했다.
과로사위에 따르면, 쿠팡 고용규모는 4만3,171명(2020년 3분기 기준)이다. 국내 택배·물류업계 중 가장 규모가 큰 빅3에 들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고용현황 자료(2019년 기준)에서 쿠팡의 물류센터 종사 85%가 기간제로 나타났다. 덕준씨와 같은 일용직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은 규모다. 많은 양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반면 노동자들의 고용조건과 노동환경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는 "쿠팡은 산재 청문회가 끝나자 모르쇠로 일관했다. 유족 슬픔에도 경총에 가입하고 미국 증시에 상장해 축제를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덕준이 친구들은 지켜야지'하는 심정으로 계속 싸우겠다"며 "1년간 쿠팡 노동자 9명이 숨졌다. 정부는 쿠팡을 특별근로감독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고인은 지난해 10월 12일 칠곡센터 야간조로 일한 뒤 새벽 4시 퇴근해 대구 집으로 귀가했으나 당일 아침 집에서 쓰러진 채 가족에게 발견됐다.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2차 부검 조사 끝에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증'으로 드러났다. 심장에 피가 흘러가지 않아 심장 근육 손상으로 급격한 죽음에 이르렀다는 소견이다. 근로복지공단대구북부지사는 지난 2월 업무상 재해 사망으로 결정했다. 열대야에 냉방 없는 곳에서 하루 400kg 짐을 옮기며 주 62시간 과로에 시달렸다는 내용이다.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노트먼 조셉 네이든 대표는 지난 2월 9일 자사 뉴스룸 홈페이지에 "고인에 대해 애도와 사과의 말을 전한다"며 "유족에 대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근로자들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