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귀처럼 통곡하고 독사처럼 물고 늘어져라"

평화뉴스
  • 입력 2008.01.2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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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저항 키우는 인수위, 새 시대 희망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무자년 첫날의 일출을 보기 위해 올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동해안으로 몰렸다. 게다가 올해는 한 시대가 저물고, 성공한 CEO 출신의 새대통령이 이끌어갈 ‘국민성공시대’가 기약되어 있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자년 첫 일출의 의미가 여느 해와는 분명 달랐을 것이며, 저 아득한 수평선 위로 불쑥 올라 선 불덩어리가 토해내는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감회 또한 남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일출의 기운을 온 몸에 받으며 결의를 다지는 일은 아무래도 젊은이들의 몫이다. 어차피 다가올 미래의 희망은 떨쳐 일어서는 그들의 두 어깨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대신 물살처럼 흘러가는 세월에 얹힌 채 속절없이 저물어가는 삶을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은 어느 날 문득 노을이 붉게 물드는 저녁하늘이 유난히 아름답고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하여 저물어가는 자신의 삶도 노을처럼 아름답게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아쉬움과 미련을 달랜다. 이런 저물어감과 일어섬의 조화가 세상을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힘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에너지 위기, 인수위는 진정성 담긴 한마디 대책도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저물어가는 시대에 대한 ‘아쉬움’이나 새 시대에 대한 ‘희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스산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희망과 기대로 들떠 있는 곳은 오직 한 곳, 대통령직 인수위와 그 주변뿐인 것 같다. 희망이 넘쳐흘러 오히려 흥분상태에 있음직한 인수위는 결기에 찬 정책들을 거의 매일 쏟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그 정책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사방팔방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고, 불안과 공포 분위기만 확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인수위는 정작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와 에너지 위기, 그리고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위기에 대해서는 진정성이 담긴 단 한마디의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렇게 무자년은 희망보다는 불안과 공포를 떠안은 채 시작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발언권도 투표권도 없는 어린 중고등학생들에게 몰아닥칠 폭풍이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하기조차 힘 든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이제 학원들이 깎고 다듬어낸 학생들을 그들만의 서열을 정해놓은 대학들이 순서대로 골라 뽑고, 다시 그 대학들은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학생들을 깎고 다듬어 납품하는 체계로 바뀔 것 같다. 불량품으로 분류되어 기업으로 납품조차 할 수 없는 학생들은 갈 곳이 없게 된다.

그나마 학생들은 이제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까지도 영어로 해야 한다. 이렇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 ‘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로 바뀌어가고 있는 이 나라에서 어린 학생들은 무슨 꿈을 꾸어야할까? 꿈까지 영어로 꾸어야 할까?


"영혼없는" 언론인과 지식인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나라에서 국민들로부터 불과 임기 5년에 불과한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인 권력자가 제 집 뜰 안에 관상용 연못을 만들듯이 온 나라의 산과 들을 파뒤집고, 물길을 바꾸면서 초목의 씨를 말리려하고 있다.

이런 무모하고도 무지막지한 일들이 집행되는 것을 온 국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민주화! 되었다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이다. 여기에 “영혼없는” 일부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이 서푼어치도 안 되는 지식과 재주를 팔아가며 부역하고 있다.

나랏말이 없어지고, 산천초목이 무너지고 사라진 나라에 희망이란 게 있을지, 꿈이란 게 있을지, 사랑이란 게 있을지, 문화라 이름 붙일 그 무엇이 남아 있을지, 역사라는 게 흔적이나마 남아 있을지...무자년 벽두부터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불안과 공포는 바로 이런 의문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한 때 길거리에서 희망의 전사 노릇을 하던 '386' 사람들


지난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87년 체제의 종말”이란 말들이 떠돌았다. 그렇다. 87년 체제는 끝이 났다. 1987년 유월, 비분강개한 젊은 혈기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부터 조심스럽게 가져왔던 희망의 시대는 20년의 세월이 지난 뒤 처참한 절망으로 종말을 맞았다. 국민들의 희망은 권력에 의탁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권력의 하사품도 아니라는 교훈을 남긴 채 87년 체제는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다가올 새 시대의 희망은 권력으로부터 내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기대와 흥분으로 들떠있는 인수위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희망을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을 위한 잔치상을 차리는 일일 뿐이다. 권력의 주변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국민들의 희망과는 전혀 관계없는, 오직 하나 잔치상 앞에 마련될 혹은 사라질지도 모를 자신들의 ‘자리’일 뿐이다. 한 때 길거리에서 희망의 전사 노릇을 하며 ‘386’으로 불리던 사람들은 이제 조로(早老)의 초라한 정치꾼 모습을 한 채 새로 차려지고 있는 잔치상을 먼발치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다.

희망은 “밥, 이성(理性), 나라, 민족, 인류... 무엇을 사랑하든지간에 오직 독사처럼 감겨들고, 원귀(寃鬼)처럼 집요하고, 주야로 그칠 줄 모르는 사람이라야”만 가질 수 있는 것! 루쉰의 외침이다. 새시대의 희망은 이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원귀처럼 통곡이라도 해야 한다. 독사처럼 물고 늘어지기라도 하여야 한다.


[김진국 칼럼 11]
김진국(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의사. 대구경북 인의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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