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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정운찬 그리고 맹자

기사승인 2009.10.19  0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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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국 칼럼]..."이상만 추구하다 진흙탕에 나뒹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얼마 전 "X 같아서" 시골에 은둔하고 있다는 김지하 시인이 "한마디로 X 같아서" "주둥이 까는 자리"에 써놓았다는 글 한편이(<조선일보> 2009. 09.26 시론 '천만원짜리 개망신')이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보통사람의 상식으로 보면 조간신문의 시론에 올라온 표현치고는 좀 거칠다 싶긴 하지만 "지우지 말길 바란다" 고 신신당부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 싶다. 대(大) 시인의 표현에 누가 함부로 칼질을 하랴?

 정권의 충견들이 눈에 불을 켜고 검열을 하던 시절에도 김수영 시인은 버젓이 "네에미 어쩌구" 에다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뭐나 빨아라" 는 표현('거대한 뿌리')을 쓴 적도 있고, 서른 살 나이에 잔치판 종 친 이야기로 대박을 터트렸던 한 여자시인은  "컴-퓨-터와 씹"하고 싶다는 말(최영미, 'Personal Computer')까지 늘어놓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람마다 취향과 인연이 다 다른 지라 김지하 시인이 "정운찬씨를 좋아하"는 사실에 대해  시비를 따질 건 못된다. 게다가 야당, 특히 민주당은 MB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무한질주가 가능토록 길을 닦아 놓았기도 하고, 한 때 자신들의 주군으로 옹립하려했던 전력까지 있는지라 김지하 시인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물어뜯는 야당의원들이 "한 마디로 X 같"다는 심사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다.

 
 
▲ <조선일보> 2009년 9월 26일자 '시론'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두둔하기 위해 김지하 시인이 맹자를 끌어들인 것은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다. 청문회는 말 그대로 공직자의 말을 듣는 자리이고, 그 말을 통해 공직자의 품성과 깜냥을 판단한다. 그 판단의 주체는 국회의원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국민들이다. 그래서 청문회를 온 국민을 상대로 생중계까지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말을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것을 맹자는 지언(知言, 공손추 상 2장)이라 했다. 청문회에서 정운찬 총리기 내뱉어 놓는 말 때문에 김지하 시인이 좋아하든 말든 간에 그의 능력과 품성은 이미 온 천하에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화재의 원인을 놓고 재판에서 한참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용산참사에 대해 정운찬 총리는 "화염병이 화재의 원인"이라고 자신있게, 유창하게 말했다. 이를 보면 그의 귀와 눈은 무언가에  꽉 막혀 있음을 알 수 있고(詖辭, 知其所蔽), 근대시민사회에서 공직자는 국민에게 행정서어비스를 제공하는 머슴일진데 그저 가마 탈 생각에 젖어 국민을 오히려 가마꾼 취급하고 있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봉건시대의 선민의식에 푹 빠져있음(淫辭, 知其所陷)을 알 수 있다. 또 4대강사업과 세종시 문제에 대해 사특하게도 말을 이리저리 바꾸는 걸 보면 국민의 정서와는 동 떨어진 사람(邪辭, 知其所離)임을, 그리고 자신의 소득과 재산문제에 대해 말을 빙빙 돌리며 거짓말을 일삼는 걸 보면 처지가 몹시 궁색하다는 것(遁辭, 知其所窮)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한데" 어찌 저 지경으로 양파 꼴이 되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고 있다. 사람은 모두 태생적으로는 선하다고 했던 맹자는 이를 함닉(陷溺), 곡망(梏亡), 방심(放心) 탓(고자 상 7,8,11)이라 설명한다.

 다시 말해 정운찬 총리는 자신만의 세계와 환경에 갇힌 채(陷溺) 주변을 둘러 볼 안목이 없었고, 양심과 선심이란 미미하여 계속 가꾸고 키워나가야 하는 것인데 도끼질로 산에 나무를 베어내듯 다 베어내 버렸고(梏亡), 재물은 눈에 불을 켜고 찾지만 잃어버린 양심(放心)은 되찾아 올 줄 몰라 생긴 것이다. 맹자에게 학문의 목적은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아오는 것일 뿐인데(學文之道無也, 求其放心而已矣) 정운찬 총리는 학문을 출세의 도구로 이용했다.

 게다가 맹자(양혜황 상 4장)는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 죽이는 것과 폭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는 전혀 차이가 없다고 했던 사람이다. 금고에 돈과 금붙이와 주식이 가득가득 쌓여 있는 집안에는 세금마저 듬뿍듬뿍 깍아주고, 반면에 길거리를 서성이는 실업자들이나 철거민들은 굶어죽든 얼어죽든 불에 타 죽든 스스로 숨길을 끊든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그런 정부가 내리는 벼슬을 냉큼 받은 사람을 맹자가 명지(明志)가 겸비된 현자(賢者)나 군자라 평가했을 리는 없다. 맹자는 이런 사람을 향원(鄕愿)이라 불렀다.

 향원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흑백, 시비를 가리지 않고....(중략) 소직(小職)을 주면 사양하여 겉으로는 겸손한 듯 보이나 그의 뜻은 큰 것을 얻으려는 데 있다. 그 행사를 살펴보면 별다른 트집을 잡을 것이 없으나 그의 마음을 살펴보면 더럽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여유당 전서 논어고금주 양화편)"다고 했다. 공자는 이런 향원을 덕의 도적이라고 했다(鄕愿, 德之 賊也 논어 양화편).

  그러나 덕! 도덕성이라는 거... 이 나라에는 지금 누군가가 훔쳐갈 도덕이란 게 없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들은 도덕성을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개나 뜯어 먹어라고 내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항산(恒産)이 없는 시대에 항심(恒心)을 잃어버린" 국민들의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일. 그러니 도덕성과는 전혀 무관한 정운찬 총리가 총리직을 유지하든 야당의 공세로 낙마를 하든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그 자리를 지키려는 총리가 애처로울 뿐이다. 정운찬 총리가 누리는 "부귀영화는 그의 덕성과 학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권력이 내려 준 것이므로 꽃병 속의 꽃과" 같이 뿌리가 없으니 시들기만 하면 금방 버려질 신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MB 정부와 그 각료들을 비난, 비판한다고 해서 진보, 개혁성이 담보되는 것도 아닌 만큼 신임 총리의 존재에 대해 우리가  그리 과도한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문제는 그들만의 잔치판을 바라보며 좌절한 나머지 우리가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젖어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항이 벽에 부닥칠 때 허무주의와 염세주의가 새파란 싹을 키운다. 멀고 또 높은 이상만 추구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진흙탕에 나뒹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맹자가 설파한 인정(仁政)의 작은 한 부분만이라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실현, 구체화될 수 있도록 흩어진 작은 힘들을 모아야 한다.

 
 





[김진국 칼럼 27]
김진국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의사. 신경과 전문의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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