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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에 통곡하던 대폿집 곡.주.사

기사승인 2010.03.03  09: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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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주사 이모 정옥순①
"한번 찾아온다 해놓고선...떼먹지 않으면 외상장부가 뭔 필요가 있어"

                                  
"○○는 3만4천원, ○○는 2만원. 그리고 ○○는 20만원 넘는데 그냥 지나갔지 뭐, 한번 찾아온다고 해놓고선…" 그렇게 써내려간 외상장부가 모두 7권이었습니다. 장부에는 출입했던 이들의 술자리 행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를테면 외상장부는 주인의 몫이 아니라 술집을 들락거린 그들의 일기였던 셈이죠.

갚겠다며 떼먹은 사람들...

세월이 무척이나 흘렀지만 그는 외상장부에 적힌 이름을 적지 않게 외우고 있었습니다. 특히 갚겠다고 말하고 떼먹은 이들의 경우는 액수까지도 정확히 기억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외상을 받을 생각이 있어서 오랫동안 장부를 간직한 것은 아니라고 애써 말합니다. 애초부터 받을 생각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 그리워 외상값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학생의 아이는 결혼했는지?…술 많이 먹던 △△학생은 요즘 어떻게 지내나?” 그는 학생들의 근황을 무척이나 궁금해 합니다. 왜 학생이냐 구요. 쉰이 됐건 마흔이 됐건 그의 눈에는 여전히 학생일 뿐입니다. 당시 가장 많이 찾던 술꾼 고객은 대학생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릅니다. 학생들이 많이 찾던 막걸리 집, 외상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고 보니 막 3월이 시작됐고 캠퍼스에도 새내기의 힘으로 이전보다 활기가 넘칠 때입니다. 요즘의 학생들도 외상으로 술을 먹는지, 아니 그보다는 외상으로 술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모르긴 해도 흔하지는 않겠지요. 신용카드가 외상을 대신하는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과거에는 돈 없이 술집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70~80년대 대학가에서 주점을 하던 주인이 외상장부를 공개했더니 학생증이 수두룩하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학생증이 나왔다는 것은 술값을 갚지 않고 떼먹었다는 것입니다.

대구의 대표 대폿집

그런데 이곳은 학생증도 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 술집은 지금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단장한 간판에 이름만 그대로 일뿐 주인도 분위기도 메뉴도 예전 것이 아닙니다. 그 술집 이름은 ‘곡주사’입니다.

대구시 중구 덕산동 염매시장 뒷골목에 자리 잡은 대폿집입니다. 곡‧주‧사-‘울 곡(哭), 술 주(酒), 선비 사(士)’ 또는 ‘울 곡(哭), 저주할 주(呪), 선비 사(士)’-는 한마디로 기개 있는 술집입니다. 이름 그대로 뜯어보면 유신독재에서 저주하며 통곡하는 선비들이 출입 하던 곳으로 빗대집니다. 곡주사의 유래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곡주사는 유신독재와 신군부가 활개 치던 70~80년대의 암울한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는 현장이었습니다. 하긴 새벽부터 진을 친 형사들도 시대의 현장을 지키는 파수꾼이긴 했습니다. 역설적으로 형사들과 그런 형사에 의지하는 권력이 이어졌기에 곡주사가 대구를 대표하는 대폿집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바꿔 말하면 철권으로, 유혈로 국민을 억누르면서 군림한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없었다면 곡주사는 단지 서민들의 애환이 짙게 밴 목로주점에 그쳤을지 모릅니다.

38년 곡주사 지킴이...

 
 
▲ 곡주사 이모 정옥순(77)

그러나 곡주사가 이처럼 그 이름값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딴 데 있습니다. 38년의 곡주사 지킴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지킴이는 바로 학생들의 영원한 이모 정옥순(77)님 입니다.

예쁘고 다정다감했던 이모는 이제 팔순이 다되어 갑니다. 그래도 학생들이 어렵게 찾아가면 곱게 단장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야기 끝에 주섬주섬 외상장부 이야기를 살짝 얹습니다.

‘외상이면 사돈집 소도 잡아먹는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소를 잡는 일은 괜찮을지 모릅니다. 당장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사람 잡는 일조차 흔한 세상이니 말입니다. 외상 중에 술값 외상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합니다. 이모도 동의합니다.


"연전에 버스에서 ○○를 만났지. 교수가 돼 어려운 친구 아이를 거두고 있다고 그래. 정말 고맙기도 하고 잘 하는 것 같아 외상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했지. 떼먹지 않으면 외상장부가 뭔 필요가 있어"


[박창원의 인(人) 1]
첫 번째 연재 '곡주사 이모'①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박창원의 인(人)>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연 있는 대구경북의 어르신을 찾아 그 삶을 매주 이어가려고 합니다.
대구 염매시장 대폿집 곡주사 이모부터 자유당 독재에 맞섰던 투사들까지, 굴절된 역사 삶으로 새긴 그 사연들을 엮어가려고 합니다. 또, 그 사연에 사연이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 곡주사 외상장부에 이름 올리신 분들, 곡주사 이모와 애뜻하셨던 분들의 사연 기다립니다.
-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421-6151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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