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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달란 외침에 좌.우가 무엇입니까"

기사승인 2010.10.01  18: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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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10월 항쟁' 64주년 추모제..."제발 더 늦기 전에 특별법 제정을"


"배고프니 쌀을 달란 외침에 죄없는 우리 아버지들은 재판절차도 없이 금수강산 골짝 골짝마다 피로 도랑을 만들며 죽어갔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역사적 항쟁에 여당.야당이 어딨으며 좌.우가 무엇입니까"

 
 
▲ '10월 항쟁 유족회' 채영희(66) 회장이 "제발 더 늦기 전에 10월 항쟁을 특별법을 만들어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10월 항쟁 64주년 희생자 추모제 >(2010.10.1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10월 항쟁 유족회' 채영희(66) 회장의 말이다. 채 회장은 10월 1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열린 '10월 항쟁 64주년 희생자 추모제'에서 "10월 항쟁은 해방정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민중항쟁"이라며 "제발 더 늦기 전에 특별법을 만들어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진실규명' 이후 첫 공식 추모제

이날 추모제는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을 비롯해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3시 '조상굿.살풀이굿'(무형문화제 이수자, 삼족오본부예술단)을 시작으로 고유제와 추도사, 헌화.분향, 추모영상 상영 순으로 3시간가량 진행됐다.

특히, 올 추모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3월 이 사건의 실체를 인정하는 '진실규명'을 결정한 뒤 공식적으로 처음 열리는 추모제여서 의미를 더했다. 또, 올해는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주관하던 예전의 추모제와 달리, 지난 해 12월에 창립한 '10월 항쟁 유족회'를 중심으로 대구경북진보연대,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민주노총대구본부, (사)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가 함께 주최했다.

 
 
▲ 추모제에는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을 비롯해 20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광복 이듬 해 1946년 미군정의 식량정책에 항의하며 일어난 '10월 항쟁'은, 10월 1일 대구 도심에서 시작해 12월 중순까지 경남.전남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이어진 대규모 민중항쟁으로 '10월 사건' 혹은 '10월 폭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국에서 230여만명이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 항쟁은 6.25전쟁 이후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이어지며 수 많은 희생으로 이어졌다.

진화위 "국가에 책임" / 유족들 "2,500여명 희생"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9월 8월 '대구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을, 2010년 3월 30일에는 '대구 10월 사건'에 대해 잇따라 '진실규명' 결정을 발표했다. 또, 민간인 60명이 적법 절차없이 희생된 사실을 확인하고 국가에 책임 있다며 피해자와 규족들에게 사과하고 위령사업을 지원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대구교도수 수감자를 비롯한 보도연맹 가입자 2,500여명이 가창, 경산코발트, 팔공산, 화원을 비롯한 대구 인근 20여 곳에서 학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 '10월 항쟁 유족회' 이성번 사무국장(사진 맨 왼쪽)과 유족들...이 국장의 조부(이병옥)는 대구운수노조위원장으로 10월 항쟁에 참여한 뒤 보도연맹 사건으로 1950년 7월 대구 가창골에서 희생됐고, 부친(이복영)은 '유족회' 활동으로 5.16쿠데타 이후 10년 형을 선고받고 5년을 복역했다고 한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쌀을 달란 외침에 피의 도랑을...10월 항쟁 특별법 제정을"

채영희 회장의 부친(채병기) 역시 10월 항쟁에 가담했다 곧 바로 행방불명돼 소식이 끊겼다. 채 회장은 "해방 되고 미군정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친일파 등용이었고, 그 친일파들은 악착 같이 식량공출로 학대하며 고혈을 빨았다"며 "배고프니 쌀을 달란 외침에 죄없는 우리 아버지들은 재판절차도 없이 금수강산 골짝 골짝마다 피로 도랑을 만들며 죽어갔다"고 되새겼다.  이어, "이 항쟁에 여당.야당이 어딨고 좌.우가 무엇이냐"며 "제발 더 늦기 전에 10월 항쟁을 특별법을 만들어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 유족들의 추도 묵념...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MB 성의 보이지 않아...겨우 얻은 것은 추모의 자유 뿐"


민족자주평화통일대구경북회의 강창덕(84) 고문은 추도사를 통해 "추석 명절에 성묘할 산소도, 조상에 술 한잔 올린 산소도 없다"며 "늙어 갈수록 사무치고 사무치는 이 원한은 언제 풀 수 있을까"라며 애도했다. 이어 "진실화해위가 국가의 범죄행을 인정하고 명예회복과 보상을 해야 한다고 결정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겨우 얻은 것은 오늘처럼 공공연히 위령하고 추도하고 추모할 수 있는 자유 뿐"이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 '10월 항쟁'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기록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한편, 이날 추모제에는 유족과 단체 회원을 뺀 시민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가뜩이나 시민들의 관심도 낮은데, 행사장 주위를 현수막으로 둘러싸는 바람에 오히려 시민들의 눈길과 발길이 막힌 것 같고 뭔가에 갇힌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추모제가 열린 '화합의 광장'은 여러 천막과 현수막으로 둘러쌓였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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