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땅 갈아엎을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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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편지> 몸부림 몸서리...새해 '일상의 감동'을 위하여


"기자는 내 인생의 전부였는데, 요즘은 잘..."

어제 밤 대구의 한 기자가 한 말입니다. 참 열심히 하는 기자로 평이 나 있는데, 조금은 지쳐 보였습니다. 힘겨워도 보이고. 무엇보다 '의미'를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매일 쏟아지는 기사에, '땜빵'하듯 묻고 쓰고 채우고, 정작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은 겨를도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공사판의 목수도 아니고, 별 기술도 없이 잡부처럼..." 오가는 얘기 속에 '잃어버린' 우리의 뭔가를 내내 생각했습니다.

기자들의 송년

한 해를 그냥 지나치기 그렇다며, 기자 5명이 12월 30일 밤에 마주 앉았습니다. '활기'라기 보다 다들 일에 찌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기자는 노트북 켜놓고  실시간 뉴스 체크하며 수시로 회사에 보고했고, 우리는 그 뉴스 뒷얘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갔습니다. 기자들이 만나면 거의 최근 '뉴스'로 시작해 '출입처', '언론계' 얘기를 나눕니다. '취재원'과 '정보'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 웬만한 동네 얘기는 다 도마에 오릅니다. 특히, '언론계 사람' 얘기는 단골 메뉴입니다. 최근 검찰에 수사받고 있는 언론인들, 누구는 인정했고 누구는 버티고 있다더라, 그 문제로 누구는 회사에 사표냈다더라... '선거판' 얘기도 많았습니다. 신문사 누구는 2012 총선 때 달서구 쪽에 나갈 모양이더라, 방송국 누구는 수성구에 눈독 들이더라... 어느 하나 보도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설'일 뿐이지만 대체로 맞다거나 그렇게 예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젠 대부분 마흔 전후의 나이가 됐습니다. 총각은 가장이 됐고 평기자는 '차장'을 달았습니다. 여전히 비슷한 게 있다면, 서로의 열정에 대해 상당히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점입니다. 그것 때문에 '보고 싶다'고 연락하고 온갖 '비하인드'를 털어놓습니다. 특히, 회사 내부 사정에 특종과 낙종 뒷얘기, 매우 많은 취재원들을 안주 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건강한 기자의 의지를 마음껏 느낍니다.

"기자가 그라마 되나", "선배, 기자 그만두면 뭐 할겁니까?", "정년 때까지 우짜던동 붙어있어야지", "좀 씁쓸하네", "뭐 좋구만", "관두면 뭐 할 수 있겠노. 기자에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당장이라고 그만둘 것 같은데요", "지나 게나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게 참...", "현직에 있으며 그러면 되나", "현직 떠나면 약발이 안 먹히잖아요", "당신은 롤모델이 누구야?", "솔직히 모르겠어요", "난 리영희 선생님이었는데..." 얘기는 자정이 넘었고, 한 해의 끝이라는 12월 31일 매우 이른 새벽에 '새해 인사' 나누며 돌아섰습니다.

자기 얘기, 자기 고민


연말을 맞아 '2010 송년'이라는 아이콘을 붙여 8명의 글을 실었습니다. 헌 책방은 연 사람, 새내기 기자, 4대강 사업 때문에 줄창나게 낙동강 다닌 사람, 20년 활동에 전기를 맞은 사람...나름대로 특색을 띤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글 속에는 하나 같이 '고민'과 '반성' 진하게 묻어났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좋더라"고 전해왔습니다. 딱딱한 기사나 성명서 같지 않고 '자기 얘기, 자기 고민'이 담겼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12월 중순, 평화뉴스 송년모임이 있었습니다. 편집위원, 칼럼니스트, 기자.임원을 포함해 15명이 한 해 소회와 새해 덕담을 나눴습니다. 쉰이 넘은 한 선생님은 "새해에는 좀 착하게 살겠습니다"고 하셔서 한 바탕 웃었습니다. 대구사회, 평화뉴스, 지식인...많은 얘기들 끝에 "이상은 높게, 잔은 평등하게"라는 귀에 익은 한 신부님의 건배사로 자리를 마쳤습니다.

12월 31일 새벽, '2010년 새해'라는 보라빛 아이콘으로 눈 덮힌 앞산에서 만난 시민들과 재야.시민사회.학계 원로 인사의 새해 소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오후, 사무실에서 독자들에게 띄우는 송년편지를 씁니다. 사실, 12월 초부터 뭘 쓸 지 생각했습니다. 그 때마다 조금씩 메모를 했지만, 정작 지금은 그 메모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해마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정말 연말.연초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온 몸에 기운이 빠진 듯 지쳐있고, 오늘은 제때 점심 먹고 나름대로 '송년' 분위기 내고 싶은데, 여의치 않습니다.

몸부림, 몸서리
 
올 한해를 돌아보며 연말에 메모한 단어들입니다. 몸부리치며 부딪혔지만 몸서리칠만큼 답답하고 갑갑한 느낌이었습니다. 남북관계가 그러했고 노동.인권현장이 그러했고 '없는 사람들'의 처지가 그러했습니다. 이 단어 앞에 '하루 살이'를 붙여보기도 했습니다. 저에 대한 얘기입니다. 오늘 취재와 기사를 넘기면 '내일은 또 뭐 싣나' 생각으로 설칩니다. 하루 하루 빡시게 해도 또 내일이 기다리고, 그 내일은 거의 반갑지 않은 숙제만 던져주었습니다. 저 역시 몸부림.몸서리 치는 날들이었던 같습니다. 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양분은 별로 없는, 부실한 지면을 보며 밤 설치는 날 많았습니다.

감동도, 느낌도 없는

글 꼬라지가 영...이런 글을 써야 하나? 감동도, 느낌도, 깊이도 없는, 이 부실한 글을 올려야 하나? 컴퓨터 옆에 눈처럼 쌓인 꽁초를 보며 또 담배를 뭅니다.  필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글, 독자들께 내놓는 게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매일은 못해도 매주 한 두 건이라도 제대로 써야 하는데, 몸 피곤한 날 마음은 더 피곤해집니다. 감동은 사람에게, 느낌은 현장에서, 깊이는 고민에서 나오는데, 철썩같이 믿는 걸 왜 제대로 하지 못할까. 독자들께, 후원인들께 죄송하고 부끄러운 날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짐합니다. 더 고민하고 더 뛰고 더 다가가겠습니다. 내년 이맘 때는 조금 덜 부끄럽게...

짜릿한 밤
 
2010년 6월 3일 새벽, 전날 치러진 6.2지방선거 개표 소식을 밤새 전했습니다. 짜릿했습니다. '풀뿌리후보'로 나선 유병철(북구의원)씨가 막판까지 20표를 뒤지다 '부재자 투표함'에서 25표 차 아슬아슬한 뒤집기를 했습니다. 짜릿했습니다. 다른 '야권연대' 후보는 대체로 '낙승' 분위기였습니다. 야권연대 후보로 나선 10명이 이날 새벽 당선됐습니다. 기초의원 선거에서 진보정당 후보 4명이 모두 당선됐고, 민주당 4명, 국민참여당 1명, 그리고 '풀뿌리후보'까지. 4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단지 '야권'이 돼서 좋은 게 아니라, 철옹성 같은 대구의 변화였고 한 목소리 뿐인 의회에 다른 목소리도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구 야5당 대표들이 '선거연대'를 주제로 평화뉴스에 릴레이 글을 싣던 1월만 해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낸 기초의원 '4인 선거구'를 대구시의회가 몽땅 무산시킨 2월만 해도, 야권연대가 지지부진하던 3월만 해도, 야권 단일후보를 발표하던 4월만 해도, 대구시장 단일화 협상이 무산된 5월만 해도, 선거를 하루 앞둔 6월 1일만 해도 '10명 당선'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지점이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패배도, 야당의 승리도, 진보야당의 약진도 아닌, 일상의 삶을 지키려는 평범한 국민들의 의로운 승리"라며 "민초들의 열정과 온몸으로 부대끼며 한나라당 일색의 이 지역 정치지형에 작은 파열구를 낸 <범야권단일후보> 10분에게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평화뉴스 <서류당> '일상! 세상을 바꾸는 힘' 중에서)

일상의 감동

"세상 천지 완전히 새로운 뉴스는 없다". 기자들이 자주 하는 푸념입니다. 작년에, 그 전 해에 비슷한 사건.사고가 있었고, 거의 해마다 있는 선거판의 판세.분위기 보도는 크게 다르지 않고, 무슨 기념일이나 명절.연말.연초마다 나오는 기획도 그리 낯설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특혜 의혹'에, '논란.파문.갈등.뒷말.지적', '나타났다.드러났다.알려졌다' 같은 기사 첫 줄의 표현은 모범답안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이 뉴스다"고도 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새롭거나 이채롭고, 뻔해 보이지만 남다른 사연이 있고, 드러나거나 밝혀질 때마다 여론은 요통칩니다. 미담은 큰 감동이나 잔잔한 감동으로, 후담은 재미나 안주꺼리로 입 소문을 탑니다. 다만, 주의.주장은 "맞는 말이다" 하면서도 눈길이 잘 가지 않습니다. 대체로 공감하기 때문이며 내용이나 표현이 그리 새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일상의 감동". 이 지역 정치지형에 작은 파열구를 낸 것도, 사연으로 전해지는 잔잔한 울림도 '일상'에서 비롯됩니다. 그냥 엄마들, 가장들, 아이들, 월급쟁이, 우리 할머니...여기에 보육이, 교육이, 복지가, 비정규직이, 경기가, 정치가 살아있습니다. 그 일상에 조금 더 깊이 다가가려고 합니다. 저는 길가는 사람들이 거의 좋습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예쁜 사람은 예뻐서 좋고, 지친 아저씨는 저 같아 좋고,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 같아 좋습니다. 일상의 품에 조금 더 안겨보겠습니다.

동행

거의 1년 반만에 평화뉴스에 새 식구가 들어왔습니다. 지난 10월 공채를 거쳐 11월부터 출근한 박광일 수습기자입니다. 사법연수원 나서는 법조인들이 하나 같이 "정의를 위해" 하듯이, 그 역시 "소외된 이웃을 위해"라며 평화뉴스에 왔습니다. 그러나 혹독합니다. 매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수 없이 취재하고 다시 쓰고 욕먹고, '88만원 세대'의 짠 월급에 쉬는 날도 변변찮고, 출입처에서 맨날 물 먹고...그의 일상이 안스러울 때 많습니다. 그러나, 소외된 이웃이 누구며, 왜 그런지, 무슨 정책이 필요하고 뭐가 문제인지 알아야 하고, 그 내용을 기사로 전할 수 있는 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수습'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는 평화뉴스의 큰 희망입니다. 캄캄한 늦은 밤, 힘 없이 사무실을 나설 때 "수고했다" 말 건네는 유일한 사람이며, 평화뉴스 지면이나 변화에 매일 상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저의 부실한 기사를 가장 먼저 읽어보고 '오타'를 찾아내는 첫 독자이기도 합니다. 먼 길의 '동행'입니다. 그 동행의 첫 걸음입니다. 같이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심 없이 마음껏 대안언론의 큰 그림을 같이 그려가겠습니다. 먼 길 지칠 때,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려고 합니다. 둘은 매일 얘기합니다. "독자들이 뭐라 카겠노"라고.

7년의 숙제

지난 2003년 10월, 단돈 50만원 주고 홈페이지 만들어 평화뉴스 첫 기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목 돈 들인 새 지면에 2004년 2월 28일 창간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7년... 저도 이 만큼 올 지 몰랐습니다. 다들 "하지 말라"고 말리기에, 오기 삼아 "거꾸로 매달아도 3년은 간다"고 했습니다. 1년 되던 2005년에는 후원주점을 열었고 3년 되던 2007년에는 작은 콘서트를, 5년 되던 2009년에는 시국강연을 했습니다. 그러나 5년 되던 그 날, 기념식은 고사하고 고마운 필자들과 저녁 한 그릇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것조차 '민폐'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2월 28일. 창간 7년을 맞습니다. 뭘 할까요? 참 많이도 묻고 다녔지만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노찾사.안치환.정태춘, 가수 공연을 할까도 했지만 대관이나 재정이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또 시국강연? 시민단체들처럼 무슨 '웨딩'에서 기념식이나 후원의 밤? 많이 만나 두루두루 한 잔 할 수 있는 주점? 의견들은 많은데 찬반이 워낙 엇갈려 갈피 잡기가 어렵습니다. 지역사회에 의미도 있고 살림에도 보탬이 되는, 그야 말로 '물 좋고 정자 좋은' 뭔가를 찾는 건 욕심이겠지요. 물론, 행사 보다 평화뉴스 '내용'에 신경써야 한다는 목숨 같은 당위에도 늘 눌려 있습니다. 누워도 그 생각이 제일 큽니다. 그러나, 7년. 독자들에게, 후원인들에게, 정말 고마움을 전하고 더 희망찬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민폐 덜 끼치고 펼 수 있는 자리. 그리고 지면을 채울 기획. 독자와 후원인들의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언 땅 갈아엎을 일꾼

30년 만의 추위니 폭설이니 합니다. 밤은 어둡고 겨울은 추운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순리대로 기다릴 수 있지만 세상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두움은 밝혀야 하고 언 땅은 갈아엎어야 합니다. 여기에 의지가 있고 결의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다지고 또 다져 힘차게 가겠습니다. 아우러지 못할 말과 글, 어울리지 못할 품성을 늘 경계하며, 시민의 품에서 세상을 보고 독자의 품에서 쓰겠습니다. 언 땅 갈아엎을 일꾼을 찾고 그 일꾼이 되겠습니다. 또 몸부림치고 몸서리치겠지만, 세상은 착한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2010년, 올 한해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평화뉴스 독자와 후원인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지면을 정성으로 채워주신 모든 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첫 마음 변치 않고 7년, 더 힘차게 가겠습니다. 다가오는 2011년 새해, 평화뉴스 독자와 후원인들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2010년 12월 31일
PN <평화뉴스> 편집장 유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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