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기사승인 2011.06.17  17:04:57

공유
default_news_ad1

- 송광익 / 반칠환의 『웃음의 힘』(시와시학사. 2005)


 소문도 없이 봄이 가버렸다! 철부지 예과 시절, 국문학 교양 강의 중에 교수님의 일갈이 떠오른다.“손가락 사이로 봄바람이 만져지지 않는 놈은 지금, 당장 책을 덮고서 강의실 밖으로 나가라!”라고 말이다. 그 정도 무딘 감성으로 백날 문학책을 파고들어 봐도 말짱 꽝이라는 말씀이다. 물론 아무도 강의실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과연 몇몇이나 봄바람을 느껴 보았는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다.

 소리도 없이 뜨거운 여름이 익어가고 있다! “귀 밖으로 흘러 보내던 싸구려 노래에도 이 밤처럼 뜻을 새기게 한 적은 없었나봅니다.” 그 시절 글벗이었던 친구 녀석의 탄식이자, 두고두고 나로 하여금 탄성을 지어내게 하던 구절이다. 평소 콧방귀나 끼던 이미자 노래에 눈물 글썽이고, 나훈아 목청에 괜스레 가슴 저미면, “넌 이미 사랑에 빠졌다.” 라고.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가 내 마음을 진작부터 노래하고 있었단 걸, 정말 예전에는 미처 몰랐음을 말이다.

 때 이른 장마가 온다는 소리 소문만 무성할 뿐 불볕더위만 지레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사노라면 저도 몰래 한쪽 어깨가 뻑지근하고, 가슴 한 구석이 마냥 답답해 올 때가 있다. 뭐 그렇다고, 등에 걸머진 삶이라는 놈이, 혹에 속에 담고 있는 온갖 생각이란 놈들이 한꺼번에 비워질 리도, 또 그런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자는 건 아니다. 그냥 기지개라도 한 번 시원하게, 혹은 재채기나 한 번 속 시원하게 해보았으면 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다.

 
 
▲ 반칠환 저| 시와시학사 | 2005.09
 반칠환이라는 사내의 『웃음의 힘』(시와시학사, 87쪽, 7,000원)이라는 가벼운 시집이 있다. 근래 뒤꽁무니에 차고 있다가, 곧잘 자발적으로 강탈을 당했던 책이다. 책 두께도 가볍고, 안쪽 내용도 짧고 가볍기 짝이 없다. 아예 달랑 한 행이 전부인 시로부터, 길어도 10 행을 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서 촌철살인의 번뜩이는 직관의 의미를 읽어내며 무릎을 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웃음의 유희성과 지나친 가벼움으로 시의 품격을 망가뜨릴까봐 이맛살을 찌푸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수기설법(隨機說法)이라, 제각각 자기 그릇만큼만 담아가시기를 바라며 몇몇 대목을 챙겨본다.


․ 지빠귀를 밀어내지 않는다 (「뻐꾸기의 서원(誓願)」)
․ 겨울 양재천에 왜가리 한 마리 / 긴 외다리 담그고 서 있다 // 냇물이 다 얼면 왜가리 다리도 / 겨우내 갈대처럼 붙잡힐 것이다 // 어서 떠나라고 냇물이 / 말미를 주는 것이다 // 왜가리는 냇물이 다 얼지 말라고 / 밤새 외다리 담그고 서 있는 것이다 (「냇물이 얼지 않는 이유」)
․ 어떤 건달 하나 / 일출봉에 올라 월출을 보고 / 월출봉에 올라 일출을 보더니 / ‘세상의 命名(명명) 믿을 거 하나 없다’ / 장히 탄식하더라 / 제 낮밤 바뀐 줄도 모르고 (「때 2」)
․ 아가야 아픈, 아가야 / 오만 가지 병을 다 고친 저 돌은 아프지 않대 / 쾅쾅 쇠메로 두드려도 울지 않는대 // 아가야 아픈, 내 아가야 / 아프면 살리라 (「병원 24시」)
․ 새들에게 가장 충격인 것은 // 날아오를 하늘이 없는 것보다 / 내려앉을 대지를 발견 못했을 때라고 (「새 2」)
․ 어린애는 주먹에 쥔 빵 조각을 보고 / 노인은 제가 온 먼 곳을 본다 (「원시와 근시」)
․ ‘나는 너, 너는 나 / 우리는 한몸이란다’ / 설법을 듣고 난 동자승이 말했다 / ‘알았어요. 하지만 내가 스님일 때보다 / 스님이 나일 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기주의」)
․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 현행범이다 / 활짝 웃는다 /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웃음의 힘」)


 그의 애칭인 ‘작은 거인’만큼이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국 전통 음악과 록의 접목을 시도했던 김수철이라는 가수의 수줍은 고백을 떠올려본다. “어렵게 수소문 끝에 이리저리 귀 공부를 다니던 시절, 거문고 산조를 듣던 중 깜빡깜빡 졸다가 혼이 난 적이 많았다. 나름 준비하고 마음을 다지고서 뛰어들었다지만 우리 소리에 막혔던 귀를 연다는 게, 참 막막하고도 어려운 일이더라. 그래서 국악이라는 소리에다 현대적인 감각이라는 당의정을 입혀보려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은 서툰 귀이지만, 국악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보물이 넘쳐나는 세계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 음악이 그 황홀한 세상으로 건너가는 작은 징검다리이기를 바랄 뿐이다.”

반칠환이 보여주는 세상 또한 반쯤 칠하다가 만 환상곡의 그 어디쯤일 것이다. 나머지 반은 여러분들의 상상력으로 메워서, 부디 풍성한 시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행운의 열쇠가 되기를 소망한다.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에서) 라고 하지 않는가!

 
 




[책 속의 길] 22
송광익
/ 의사. 소아과 전문의.
대구시달성군의사회 회장. 대구경북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평화뉴스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ad40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